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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일기장」으로 들여다보는 ‘정약용과 천주교’

이주연
입력일 2024-12-06 수정일 2024-12-09 발행일 2024-12-15 제 342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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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학자 정민 교수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 다산 일기 4종 세밀히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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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엮고 씀 / 688쪽/ 4만 원/ 김영사

오랜 시간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 온 고전학자 정민(베르나르도) 교수가 「금정일록」과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 등 다산이 남긴 일기 4종을 세밀한 독법으로 밝혀냈다. 국내 최초로 주석을 붙여 완역하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백문백답 형식으로 다산의 생애에서 가장 격렬하고 긴장 높았던 시절의 기록을 공개했다. 그 시기는 이가환과 이승훈, 정약용을 천주교와 관련된 ‘사학삼흉’으로 지목해 조정에서 처벌 논의가 치열하고 뜨거웠던 때다.

정민 교수는 일기 본문과 함께 「다산시문집」에 실린 편지·시문, 「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각종 상소문 및 척사 기록, 족보 등을 종합 검토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일기 속 정황을 교차 검증했다. 이를 통해 다산이 말로 드러내지 못한 의도와 속내를 들춰냈다.

특별히 이 일기들은 다산 문집에는 모두 누락된 것들이다. ‘왜 이런 일기를 남겼으며, 무슨 이유로 문집에서 빠졌을까?’, ‘일기에 감춰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의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정 교수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다산이 행간에 숨겨둔 천주교에 얽힌 속내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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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화. 위키미디어

‘다산과 그의 시대를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육성으로 만나고 싶었다’는 저자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무결한 위인 다산이 아니라 뾰족하고 거침없으며 모순적인 젊은 날의 다산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다산이 지방 말단 관리로 내쳐진 이유와 그를 좌천시킨 정조의 본심, 천주교도를 검거해 비방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력과 속마음, 같은 남인과 날을 세우면서까지 성호 이익의 유저(遺著)를 정리한 젊은 날 가파르고 직선적인 성정 등을 찾아낸다.

다산의 일기는 일상의 단상이나 개인적 소회 대신 객관적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다. 편지 한 통, 무심하게 언급한 조정 소식 등은 특별한 주제로 귀결시키기 어렵지만, 이면에는 천주교 문제로 좌천당한 정치적·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 천주교 혐의를 벗고 결백을 입증할 알리바이를 위해 다산은 때문에 객관적 동선과 대화, 주고받은 문서를 기록으로 남겨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훗날을 위한 증언으로 삼았다.

천주교에 얽힌 이야기들 속에서 교회사의 행간을 살펴보듯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 1795년 말 천주교 지도자 이존창(루도비코)을 체포한 공로로 상경 명령이 떨어졌지만, 관직을 거부한다. 한때 교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를 잘 알았던 만큼 이존창 검거를 복귀와 맞바꾸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 교수가 다산의 마음속에 일말의 신앙이 남아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