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꼬마 엄마와 저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 겸연쩍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 엄마가 울먹이듯 말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가 사람 만나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고, 병실에 입원하면 늘 돌아누워만 있는데 오늘 그렇게 웃는 모습을 정말 처음 봤어요. 사실 우리 아이가 백혈병이에요. 얼마 전 항암치료를 다 끝냈는데, 증상이 쉽사리 호전되지 않네요. 사실 저는 교회를 다니고 있어 이렇게 신부님을 뵌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지만 저기,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를 좀 해주시겠어요? 한국 나이로 열다섯이지만 투병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지 저렇게 말라서, 좀 어리게 보이기도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랍니다. 중학교 갓 입학하고 나서 발병돼 지금까지 투병 중이에요. 어쩌면 부모 입장에서 저 아이를 놓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신부님, 초면에 죄송하지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 엄마는 병실에서 늘 힘겹게 누워만 있는 자신의 아이가 처음 만난 저와 해맑게 웃고 장난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병실 문 앞에서 조용히 지켜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병실을 떠날 때, 자기 아이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싶기도 했고, 왠지 마음이 동해 저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동안 아이 투병을 이를 악물며 지켜보는 엄마의 아픔은 굵은 눈물로 흘러내렸습니다.
꼬마, 아니 이제 학생이라 불러야겠군요. 학생 엄마의 말을 들으며 그 간절함에 제 마음이 동했는데 ‘함께 기도 하겠다’며 ‘힘내시라’고 용기를 드렸고, 그 엄마는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이후 아마도 6개월 정도 개인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학생 병실을 방문했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저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생기게 됐습니다.
그 엄마 역시 자신의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면 저에게 입원했다고 문자를 보내줬고, 문자를 확인하면 다음 날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동안 학생은 저에게 점점 더 소중하고도 귀한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언제였던가, 학생의 생일이 돼 ‘뭐를 갖고 싶으냐’하고 물었더니 어리기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게임기를 갖고 싶어 했고, 저의 능력에 맞는 미니 게임기 하나를 사서 선물했더니 그 학생의 행복 가득한 웃음이 병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은 언제부턴가 저의 성을 따 ‘강 벗’이라고 불렀고, 힘겨운 몸으로 감사 편지를 써서 줬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저의 친구 녀석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말입니다. 한참 친구를 사귀고 사춘기를 보낼 중학생이 힘겨운 투병에 친구마저 없는 상황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저를 ‘강 벗’이라 부르며, 친구처럼 반기는 모습을 보니 겉으로 장난은 치며 좋았지만, 병실을 나올 때마다 마음이 쓰리게 아팠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학생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우리 아이, 오늘 주님 품으로 갔어요.” (다음 호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