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원주교구 술미공소 신자들 2010년부터 성경 함께 읽어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8-10-30 수정일 2018-10-30 발행일 2018-11-04 제 311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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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과 말씀 안에서 하나됨 느껴요”
친교와 소통의 장 역할도

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 신자들이 10월 28일 공소예절 뒤 성경을 읽고 있다.

“사..무.엘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위..하여 판..관.으.로 일하..였..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변우찬(모세·48)씨는 성경 구절을 서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갔다. 고작 한 단락을 읽는 데 5분은 걸린 것 같았다. 그래도 원주 흥업본당(주임 최종복 신부) 술미공소(회장 정문선)에서 10월 28일 함께 성경을 읽던 17명의 공소 신자들과 갈거리사랑촌(원장 이병태)의 지적장애인들은 차분히 그가 성경 읽기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성경 읽기를 마친 뒤 공소의 권군자(마리아·75) 할머니는 변씨의 성경 읽기가 많이 나아졌다고 칭찬했다. 권 할머니는 “처음에는 글자도 모르던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성경을 잘 읽는다”면서 “이제는 한글을 다 배워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나눠줄 정도”라고 말했다.

술미공소 신자들이 갈거리사랑촌의 장애인들과 함께 성경 읽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공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본당 신부가 와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나머지 주일은 공소예절로 미사를 대신한다. 공소예절에는 마을 신자 10여 명과 갈거리사랑촌 장애인 30명이 참례한다. 공소예절이 짧게 끝나다보니 힘들게 모인 공소 신자들이 허무함을 느꼈고 부족한 신앙생활을 보충하자는 취지로 다 함께 성경 읽기를 시작했다.

성경 읽기를 제안한 술미공소 곽병은(안토니오·66) 총무는 “공소 신자들의 허무함을 달래고 더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성경 읽기를 제안했다”면서 “성경 읽기를 통해 공소 신자들과 갈거리사랑촌 장애인들이 신앙을 통해 친교를 이루고 한 가족이 되는 토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곽 총무는 1991년 갈거리사랑촌을 세웠고 현재는 명예원장으로 함께하고 있다.

공소 신자들은 교구에서 나눠준 성경 읽기표에 따라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조금씩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성경 읽기표는 원래 1년을 주기로 통독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소의 성경 읽기는 공소예절 뒤 한 달에 3~4회 정도만 하다 보니 한번 통독하는 데 7년 8개월이 걸려 지난해 말에야 마무리됐다. 공소 신자들은 올 초 성경 읽기 대장정을 다시 시작했다.

권 할머니는 “집에서는 눈도 침침하고 해서 성경을 잘 읽지 않게 되는데, 공소 신자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니 좋다”면서 “한동안 성경 읽기를 쉬어서 아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심윤남(데레사)씨도 “소리 내서 책을 읽는 경우가 드문데, 공소 신자들과 함께 성경을 읽어 좋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읽는 소리를 듣고 나도 눈으로 성경을 읽으니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갈거리사랑촌 지적장애인 김용일(바오로·60)씨는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면서 “최근에는 성결 필사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성경 읽기는 공소 신자들과 갈거리사랑촌 장애인들 모두가 함께 소통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보호시설 안의 장애인은 외부인과 접촉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술미공소 신자들과 갈거리사랑촌 장애인들은 성경 읽기 후 다과를 함께 나누며 소통하는 동안 하나의 공동체가 돼 가고 있었다.

곽 총무는 “성경 읽기를 통해 주민들과 시설의 장애인들이 소통하게 됐다”면서 “마을 공동체가 하나로 통합되는 데 성경 읽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