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동등한 인권 누리며 사회복귀 준비에 전념 장애인을 능동적 존재로 인정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독립 구성원으로서 삶 지원 소속 절반이상 자립홈 생활 지역과 연계해 경제활동 도와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사회복지법인 춘천교구 사회복지회 ‘애지람’을 찾았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는 애지람은 ‘사회 속으로!’라는 모토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에 전념하고 있다. 지적장애인들이 가진 동등한 인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을 애지람을 통해 살펴본다. 애지람(愛之藍)은 ‘사랑을 담는 바구니(그릇)’라는 뜻이다.
■ 사회 속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시끌벅적한 일반 지적장애인 시설과 달리 애지람은 비교적 고요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애지람에는 40명의 지적장애인들이 소속돼 있지만, 시설에는 19명만이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21명은 어디로 갔을까. ‘사회 속으로!’라는 애지람 모토에 그 답이 있다. 애지람은 단순한 지적장애인 시설이 아닌, 지적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이다. 즉 지적장애인이 지역사회 속의 독립된 한 구성원으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장애인의 사회복귀’라는 애지람의 모토는 사실 특별한 형태가 아니다. 이미 헌법 제10조,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 지적장애인권리선언, 장애인복지법 제58조 제1항 1조,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윤리강령 등 수많은 문헌들에서 장애인들의 평등권과 시민권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안전 등을 이유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시설은 많지 않다. 2015년에 부임한 애지람 원장 엄삼용 수사(작은형제회)는 “처음부터 이들의 사회복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며 “고(故) 임성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전 회장과 발달장애인들의 그룹홈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천노엘 신부(광주대교구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라고 시설에서 프로그램만 하며 일생을 살아야 되냐!”라는 고(故) 임성만 전 회장의 취중진담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는 엄 수사. 이어 천 신부에게 시설 운영에 대한 조언을 들으러 갔다가 “예수님을 또 십자가에 못 박을 겁니까!”라는 따끔한 훈계를 들으며 장애인들의 사회복귀로 방향을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관리와 보호가 목적인 집단거주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의 인권이 보장되기 어렵다. 동정과 시혜(施惠)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이들은 수동적 존재로서 시설이 짜놓은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곧 시설이 이들을 장애화(障礙化)시키는 것이다. 시설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으로, 획일화에서 벗어나 개별화를 실현할 수 있는 ‘자립홈’이 기본적 권리를 행사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첫 단계다.■ 홀로서는 과정, 자립홈
‘저녁이 있는 삶’, ‘산책’, ‘여행’ 등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장애인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버거운 현실을 넘어 꿈의 실현이다. 애지람은 2015년 11월 자립홈 준비를 위한 전 단계인 체험홈을 개소했다.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원생들은 이 과정을 거쳤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시설을 벗어나 자립홈으로 들어갔다. 현재 애지람은 강릉 교동, 노암동 등에 7군데의 자립홈을 운영하고 있으며, 2~4명씩 짝을 지어 21명이 자립홈에서 거주 중이다. 자립홈에 거주 중인 원생들은 자유롭게 산책을 하고 생일에 가족들과 친구들도 초대하며, 주변 이웃을 위해 자그마한 봉사활동도 한다. 엄 수사는 “자립홈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꾸려가는 맛을 본 원생들은 절대 시설로 복귀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만큼 만족도가 크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시설 내 질도 높아졌다. 21명이 빠지면서 5인 1실로 쓰던 방은 2~3인 실로 바뀌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드러난 집단시설의 위험성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의 상황은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동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립 초기에는 사회복지사가 오전 시간 함께 거주하고, 애지람 직원들은 수시로 이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방문한다. 애지람 변중섭(빈첸시오) 국장은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다”며 “원생들에 대한 관심과 소명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 중 한 명은 오래된 아파트를 자립홈으로 기부하기도 했고, 또 다른 직원은 자립홈 월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복지사와 직원들의 노력으로 이들은 점차 혼자 밥도 해 먹고 산책도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데 적응한다. 한편,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경제활동은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이들의 또 다른 큰 과제는 취업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여기서도 도움의 손길이 존재했다. 엄 수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취업이 중요하기에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그때 발달장애인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대표와 우연히 연결됐고, 알펜시아 측에서 먼저 취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2018년 9월 애지람에 ‘알펜시아 하우스’를 설치했다. 일반인들은 며칠이면 배우는 일을 지적장애인들에게는 6개월 이상의 반복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호텔방과 똑같은 구조를 애지람에 설치한 것이다. 여기서 객실정비 및 관리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반복훈련 했다. 마침내 3명은 정직원으로 1명은 계약직으로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입사 이후에도 애지람 국장은 알펜시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월 장애인 인권교육을 진행하며 애지람 원생들의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 알펜시아뿐 아니라 원생들은 애지람과 뜻을 함께하는 주변 공장과 기업, 식당들에 취업했고,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들은 애지람 내에서 낚시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엄 수사는 “지적장애인들이 사회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많은 이들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개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립홈을 구할 때면 지역 주민들의 선입견과 반대에 부딪히곤 하는데, 막상 지적장애인과 살아 보면 인사성도 밝고 순수한 모습에 긍정적으로 인식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애지람은 매년 자선음악회와 통일음악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모이는 돈은 모두 자립홈 유지에 들어간다. 엄 수사는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동정의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사생활과 소유권, 자율성 등을 보장해 줘야 하며, 나아가 이들의 순수성을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후원계좌 : 농협 333027-51-049844 예금주 애지람 ※ 문의 033-644-8271 애지람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