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경 벗삼아 걷는 ‘나만의 엠마우스’ 손에 묵주를 쥐고 한 단 한 단 그 신비를 묵상하며 걷다보면 오늘도 이렇듯 새롭고 은혜로운 하루를 주신 주님께 너무 감사해 마스크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움직임이 많이 줄어들어 ‘확~찐자’가 되어가고 있을 즈음 부활절을 지내고 부산교구 양산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 뒷산으로 ‘엠마우스’를 떠나게 되었다. 꾸르실료 대표 지도 신부님과 주간단, 영성관 사무장님과 함께 삶은 달걀과 김밥, 컵라면을 준비해 등에 메고 신부님의 시작 기도와 함께 기쁜 걸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여정의 길에 올랐다.
언제 이렇게 밖에서 마음 놓고 걸어보았던가. 감회에 젖어 한 걸음 한 걸음에 감사 기도와 찬양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처음 보는 풀들을 ‘어렸을 적엔 이런 풀도 맛있게 나물해 먹었노라’며 큰 목소리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걷다 보니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크고 작은 바람 소리가 우리를 환영하는 듯 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하느님의 피조물이 이리도 찬란하였던가! 파아란 하늘과 새순으로 뒤덮인 연두색의 산들이 나의 지친 마음과 피로한 눈을 쉬게 해주었다. 산에 오를수록 숨소리는 가쁘고 다리는 뭉치는 듯 무거웠지만 자꾸만 헤헤하며 웃음이 났다. 서로가 표현을 잘하진 않지만 언제나 꾸르실료에 대한 애정만큼은 최고이신 대표 지도 신부님과 주간단이 함께하는 이 시간은 오늘 하루를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렇게 산에 오르니 나무 의자가 군데군데 보였다. ‘등산객을 위하여 양산시에서 준비해주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 무거운 나무벤치를 꾸르실료 역대 관장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사무장님이 14년 전에 하나씩 하나씩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 무거운 나무의자를 갖다놓았을까.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이 산을…. 그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나무 벤치가 보일 때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였을까? 나만의 세속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앞만 보며 발버둥 칠 때 이 분들은 그저 내어주시는 예수님 마냥,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이들을 위해 이렇게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14년 전 비록 무척 힘은 들었겠지만 그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이렇게 편히 앉아 거친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힐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내가 속한 세상에서 힘은 들겠지만 작은 희생과 봉사로 그저 받았으니 그저 내어주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었다. 부활하신 하느님은 언제나 이렇듯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나를 또 깨우치게 만드시고 이끌어주신다. 그날 이후 나는 1시간30분을 걸어서 출근 또는 퇴근을 하고 있다. 하느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선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게으름에 차일피일 미루다 엠마우스 산행을 계기로 걷는 묘미를 느껴 시작하게 되었다. 손에 묵주를 쥐고 한 단 한 단 그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다 보면 오늘도 이렇듯 새롭고 은혜로운 하루를 주신 주님께 너무 감사해 마스크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런 나를 보면 무척이나 사연 많은 사람으로 볼까 봐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내 눈과 귀, 마음에 담을 것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벅차곤 한다. 구부정한 허리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볼 때면 그분들 생의 고단함이 느껴져 잠시 자리에 서서 화살기도를 바치게 되고, 마스크 쓰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볼 때면 작년 추석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그리워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느님 나라에서 잘 계시는지, 그곳은 참 좋으신지 소리 내어 여쭈어도 본다. 그러곤 당신께서 사랑하는 둘째 딸이 부활하신 예수님 손을 잡고 순간순간을 기쁘게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응석도 부려보며 오늘도 파아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랑거리는 바람을 친구삼아 신나게 나만의 엠마우스를 떠난다.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