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돌아보면 도운이를 키우는 동안 하느님은 늘 나와 함께하시며 도운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 손에 쥐여 주셨다 기쁨터라는 이름으로 용기와 담대함과 지혜로 꼭 필요한 정보를 준 루칠라 자매로…
하느님은 왜 나에게 장애가 있는 아이를 주셨을까? 이 질문은 내게 참 오래된 질문이고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다. 둘째 도운이에게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은 때는 세 돌 무렵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 일 년 전부터 도운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걱정을 했지만, 그저 늦된 아이일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던 때였다.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고도 열심히 치료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장애에서 말끔히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열심히 치료에 매달렸다. 내가 설정했던 마지노선인 초등학교 입학이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온 때였다. 그때 도운이의 변화 속도로 볼 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발달장애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할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희망도 점점 사라져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았고 과연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절망의 나락으로 깊이깊이 빠져가던 내게 노아의 눈앞에 나타난 무지개처럼 ‘기쁨터’가 나타났다. 어느 날 무심코 들여다본 지역신문에서 ‘기쁨터’라는 세 글자를 발견했을 때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처럼 멍한 느낌이었다.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자조 모임 이름이 기쁨터라니? 장애아를 키우는데 어떻게 기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거기엔 많은 엄마들이 있었고 처음 보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엄마들도 아기 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던 내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이 모임은 특수학교 학부모들이 아이들 등교시키고 교문 앞에 남아 심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누군가 우리 함께 기도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가까운 성당에서 매일 기도하던 기도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이제는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마을을 꿈꾸며 말 그대로 기쁜 마을 ‘조이 빌리지’(joy village)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암울하던 그 시절 기쁨터 언니들을 만나며 장애아를 키우면서도 살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때론 기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보다 앞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언니들이 주는 위로와 공감을 듬뿍 받으며 상처받은 내 영혼이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쁨터는 절망에 빠진 나에게 하느님이 주신 위로였고 귀한 선물이었다. 도운이가 미술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교육청에 배정을 요구했을 때 학교는 모든 학생이 시험을 통해 들어오는데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배정한 장애 학생을 받을 수 없다며 입학을 거부했다. 그때 나는 주님께 용기를 청하고 학교에 찾아갔다. 아이의 그림들을 보여 주며 그림에 재능이 있으나 장애 때문에 학업 성적을 잘 받지 못한 도운이에게 입학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공정한 일인지, 아니면 장애로 인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만큼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 결정인지 물었고 학교는 입학을 허가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청한 용기에 더해 담대함과 지혜도 함께 주셨다. 어느 날 성당 ME모임에서 도운이가 미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들은 한 자매가 자신이 근무하는 장애인 복지관에 도운이 같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며 담당자를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서 도운이는 난생처음 전시회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도운이는 이제 스물여섯 살 청년으로 자랐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어 벌써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돌아보면 도운이를 키우는 동안 하느님은 늘 나와 함께하시며 도운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 손에 쥐여 주셨다. 기쁨터라는 이름으로, 용기와 담대함과 지혜로, 도운이에게 꼭 필요한 복지관 정보를 준 루칠라 자매로. 이제 하느님이 내게 왜 장애가 있는 아이를 주셨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하느님이 내게 왜 한결이, 새온이, 채운이를 주셨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과 같다. 다만 하느님께서 도운이를 키우는 모든 시간에 나와 함께하셨음을 나는 분명히 안다.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