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목적지를 알기 어려운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된다. 그 선택 앞에서 많은 시간을 고뇌하고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아마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고뇌의 선택은 수없이 다가올 것이고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옳을지는 평생의 난제일 것이다. 나 역시 며칠 전 선택의 순간으로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본란의 글을 부탁받은 것이다. 이전에 글을 기고하셨던 필자 신부님들은 훌륭하신 분들이다. 그에 비해 나는 보잘것없고 글재주 또한 부족하다. 하물며 건강이 좋지 않아 휴양까지 했었다. 이런 나에게 글 기고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부담이었다. 부담으로 인해 성전에 앉아 한참을 기도하던 중, 내가 사는 미리내성지 성당에 모셔진 김대건 신부님 유해와 함께 신부님의 한 일화가 다가왔다.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조선으로 돌아오시기 위해 타셨던 배가 출항한 지 3일 만에 풍랑으로 망가졌고 표류하게 된다. 배는 언제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고 배가 버틴다 해도 어디로 향할지조차 몰랐다. 김대건 신부님은 당신을 기다릴 신자들을 생각하며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내어 맡겼다. 하느님께 내어 맡겨진 배가 드넓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조선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일한 조선소가 있던 제주였다. 신부님은 그곳에서 배와 물품들을 재정비하고 최종 목적지까지 무사히 항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느님의 이끄심이라는 표현 외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김대건 신부님…. 어디로 가는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위에서 두려움과 싸우셨을 것이다. 박해가 한창임에도 사제의 손길을 오매불망 기다릴 조선의 신자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 신부님은 하느님께 기댈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을 그분의 이끄심에 내어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느님께서 이끄신 곳은 김대건 신부님의 바람 그 이상의 것이었다. 김대건 신부님의 일화와 마음을 느끼며, 목적지를 알 수 없고 방황하는 나의 마음을 보게 된다.
분명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되지 않기에 내게 주어지는 것들이 부담이고 두려움이다. 게다가 그것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분명히 알 수도 없다. 아무리 나의 머리로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김대건 신부님처럼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딱 하나밖에 없다. 두렵고 힘든 상황에서 어딘가에 의탁할 곳이 있다는 것, 날 버리지 않고 늘 곁에 계실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밀알 하나’의 글을 통해 하느님께서 나를 어디로 이끄실지, 아니면 나라는 존재는 그저 김대건 신부님의 배와 같은 존재일 뿐이고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을 어디로 이끌고자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느님께서 주신 이 상황과 시간 속에서 그분께 나를 내어 맡기며 묵묵히 내 영혼의 습작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