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인이 SNS에 ‘플라스틱 일기’를 올렸습니다. 한 환경단체에서 한 달간 자신이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매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 캠페인에 동참하며 올린 겁니다.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 등 자랑하고 싶은 일상이 주로 공유되는 SNS에, 자신이 배출한 쓰레기를 공개적으로 올리는 모습에 놀라면서 매일 그 일기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지인의 플라스틱 일기에는 주로 음식 재료 포장재인 비닐과 포장·배달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가 올라왔습니다. 그는 사진을 올리며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가 나온다며 반성했지만, 제 쓰레기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은 양이었습니다. 게다가 쓰레기로 나온 용기 등은 깨끗하게 씻고, 작은 뚜껑은 따로 모으는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의 완벽하게 재활용이 가능한 형태로 배출했습니다. 대충 물로 헹구고 종류에 맞게 분리수거만 하던 저의 게으름을 콕 찌르듯, 그의 일기에는 현실에서 재활용되지 않는 엉성한 분리배출의 문제를 알려주는 정보도 올라왔습니다. 한 달 동안 일기를 쓰면서 그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며 삶에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갔습니다.
평소 생태적 삶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인의 플라스틱 일기는 그동안 제가 ‘하는 척’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아 상황에 따라 쉽게 포기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한 달만 꾸준히 실천하면 조금씩 습관으로 자리 잡겠구나, 지인의 일기를 보며 저도 살짝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긴, 고기를 좋아하던 제 아들은 학교에서 환경교육을 받은 후 갑자기 ‘한 달 동안 고기를 끊겠다’라고 선언하고는 정말 그 결심을 지켰던 적이 있습니다. 그토록 고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한 달 내내 고기반찬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 영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아이는 자신의 약속을 한 달 동안 무사히 지킨 이후 자연을 위해 무언가 노력했다는 큰 성취감을 얻었습니다. 이후 아이는 여전히 고기반찬을 좋아해도 예전처럼 많이 먹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점점 더 잦아지는 기후위기를 겪으며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을 조심한다며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에서는 이런 우리의 일상을 바꿔보자며,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사순시기 탄소발자국 줄이기를 실천해 보자고 제안하는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그대로 한 달만 실천하면 나무를 26그루 심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구체적인 결과도 제시하며 우리의 실천을 독려합니다. 어쩌면 그 ‘결과’보다 한 달 동안 실천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는, 사순시기 생태적 회개의 구체적 방법을 안내하는 자료라 생각됩니다.
올해는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꼭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사능 유출의 후유증이 여전히 심각하고,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방사성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출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어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멀리 일본이 아니라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월성 핵발전소 부지의 삼중수소 누출사고가 발생해서 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얻으려면 핵발전소가 불가피하다며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고, 에너지 사용을 줄일 구체적인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생태적 위기를 변화시키기엔 그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실천 정도로는 너무 작고 미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인 변화 하나하나가 모이면 차츰 커다란 변화도 생겨날 거라 희망합니다. 지구를 위해, 아니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해 ‘뭐라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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