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 서울 성당 가족 여남은 명과 함께 저 서남해안 소흑산도 인근 무인도 바위섬에서 닷새를 묵을 작정을 한 때였다. 그런데 하루를 앞당겨 철수한 것은 폭풍이 온다는 기상 예보 때문이었다. 그 아니어도, 바다낚시가 원체 신통찮은 터에, 낯선 외래객 건장한 다이버들이 나타났을 때 김이 새기는 했다. 고기를 못 낚아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판에 젊은 다이버들이 나타나서는 아주 대수롭잖게, 그냥 손맛이나 한번 보랴 하는 식으로 낚싯줄을 휙 던져 넣는데,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딱 두세 번 던지자 어린아이 팔뚝만한 고기가 푸들푸들 끌려오는 게 아닌가! 나는 여태껏 고기란 놈이 자기가 죽고자 하는 낚시를 스스로 선택하는 줄은 까맣게 몰랐더랬다. 아랫배가 살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판국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소흑산도에서 물이며 푸성귀 따위를 실어오던 뱃사공이 기상 조건을 전하며, 오후에라도 일찍 나오는 게 좋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었다. 점심 설거지를 하고부터 빗방울이 흩뿌려지며 바람이 거세졌다. 모두들 얼굴빛이 어두워질 밖에. 시시각각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던 터에 우리를 태울 배 두 척이 왔으나, 이 바위섬 승하선 지점에 높은 파도가 패대기를 치는 듯해 선체를 갖다 붙이기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참에, 보이지 않던 다이버들이 걱정이 됐던지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우리 면면들을 살펴보고는 뱃사공과 큰 소리로 의견을 나눈 끝에, 바위섬 저편 쪽은 바람막이가 되어 주니까 배를 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데에 뜻이 모아진 모양이다. 마른날에도 그쪽엔 걸음을 한 적이 없어 낙담이 되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잖은가?
비가 들이쳐 바위 등걸이 미끄러웠다. 길 아닌 길을 밟아 나가노라면 깎아지른 벼랑 아래는 정말이지 이빨을 드러낸 검푸른 바닷물이 호시탐탐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일행 중엔 주일학교 교사 여학생이 몇 명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지레 겁에 질려 다리를 후들거릴 게고, 마음이 화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중 지나기가 어려울 성싶은 곳에 그 달갑잖기만 했던 젊은이들이 어떤 신발인진 모르겠으나 저벅거리면서 제가끔 벼랑을 맡아 각고의 도움을 주는 거다.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곳마다, 그들 세 사람이 띄엄띄엄 바위벽을 두 손으로 짚고 버텨 서서, 우리로 하여금 그 사이로 통과하도록 배려해 주는 게 아닌가!
그들은 우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버텨 서 있는 자세 아래로 빠져나오는 우리 누구도 입을 벙긋 조차 하지 못했다. 뒤도 돌아보지 못했지만 어떻든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에, 도움이 요구되는 곳에 그들은 솔선하여 와 주었다. (오, 하느님, 그들에 대해 미리 예단하고 언짢게 생각했던 저간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배에 올랐다 해서 만사 오케이는 아니었다. 두 척 중, 내가 타고 가던 배가 기관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통통배라는 게 오토바이 엔진을 달고 있어서 이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라는 거다.
천신만고 끝에 소흑산도에 발을 내딛고, 밤을 맞고, 섬 일원에 방목하는 염소(가파른 절벽 끝마다 한 마리씩 아슬아슬하게 자리하여 수평선을 무연히 바라보는 모습이 시정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것)를 잡아, 소주를 곁들여 불냄새 나는 살점을 뜯을 땐 아, 세상은 이렇듯 놀랍고 황홀하다니! 그런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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