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본당에서는 오랜만에 비대면으로 가톨릭독서콘서트를 개최했다. 코로나19로 미사 이외에 모든 모임이 금지되거나 중단된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본당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무모한 판단이 아닌가 하며 망설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 다행이었다. 어쩌면 콘서트에 초대된 강사가 얼마 전에 서울주보에 소개된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인 김용민(베드로) 의사라 그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 덕분이 아니었을까? 나도 그의 책 「땜장이 의사의 국경없는 도전」(2019)을 접하며 평범한 인생을 살지 않은 비범한 사람이라 느껴져 그의 독서콘서트를 기대했다.
넉넉지 못한 집안의 막내라 온전한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그는 인생의 갈림길마다 자기 의지가 1%였다면 나머지 99%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다고 고백하며 ‘땜장이 인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의대를 갓 졸업한 그는 일반인들이 꺼리는 소록도 근무를 자원했지만 1년을 기다리다가 포기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발생한 한 전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발령을 받는다. 소록도에서 근무하면서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들과 같은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배려, 그리고 이웃 사랑을 배우게 된다. 이를 계기로 10년간의 냉담을 풀고 ‘나 자신보다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한센병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전공으로 정형외과를 선택한다. 대학 의대교수로 후학 양성에 오랜 시간 몰입했지만 늘 마음속에는 남을 돕는 삶에 대한 원의를 간직한다. 2010년 대지진으로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된 아이티를 돕기 위한 구호팀 모집에 지원했는데 실현 가능성이 없는 상황임에도 출발 직전 예상치 못한 합류 연락이 온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고 남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왔던 ‘땜장이 의사’로서 그는 정년까지 6년 남은 2018년 은퇴를 선언하고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로 변신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아프리카 오지를 드나들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강의를 들으면서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느끼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정체성을 잘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의 사명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올바로 실천하게 된다. 「가문비나무의 노래」(2013)를 저술한 세계적 바이올린 제작자 마틴 슐레스켄은 “우리는 삶의 예술가가 될 수도 있고, 소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삶의 소비자는 인생에서 아무 것도 깨달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 삶을 우연에 맡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삶의 예술가는 아름다움의 내적 법칙에 관심을 둡니다.”(35쪽)라고 말하며 독자에게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은근히 재촉한다. ‘삶의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낯설고 불편한 것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런 삶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고,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의문이 결여된 채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에 ‘삶의 예술가’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그 사명을 위해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것을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자기 삶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땜장이 의사’인 김용민(베드로) 형제가 바로 ‘삶의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남의 욕망에 휘둘려 늘 비교하는 삶이 된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아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때 끝없는 욕망의 쳇바퀴에서 해방되고 삶의 소비자가 아닌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자기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는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행복을 위한 것일 때 완성된다고 보겠다. 결국에 삶의 예술가는 이웃사랑에서 진가를 발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제2, 제3의 김용민을 욕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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