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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자발적인 불편함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11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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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새벽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추운 겨울이 되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귀찮고 게을러져 종종 빼먹기도 한다. 몸무게가 점점 늘고 몸도 쳐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용감하게 이불을 박차고 두꺼운 옷을 껴입은 후 깜깜한 새벽을 뚫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땀을 흘리며 힘들게 운동을 하면서 ‘오늘 오기를 참 잘했다’며 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기도 한다. 운동을 한 날은 하루 종일 힘차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운동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하지 않는다. 편안함에 익숙해진 것이다.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운동은 어렵다. 운동만이 아니다. 모든 일에 불편함을 수용할 때 무언가 이룰 수 있다.

신앙의 차원에서도 불편함은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비유’(루카14,15-24)를 통해서 편안함에 익숙해질 때 어떤 결과를 내는지 보여주신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어 손님들을 초대했는데, 잔칫날이 되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잔치에 오지 않는다. 밭을 샀기 때문에 나가봐야 하고, 겨릿소 다섯 쌍을 샀으니까 부려봐야 하고, 장가를 들어 아내를 맞이했으니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초대에 응하지 않은 이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자기들에게 자신들의 일상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일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고 그저 익숙한 세계에 머무는 것이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익숙한 세계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위험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부모와 친척과 고향을 떠나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편안함과 안전함에 익숙해진 일상을 깨버리는 것이 회개이고, 회개를 통해 불편함과 낯설음을 느낄 때 깨어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편하다고, 낯선 것을 불편하다고 여긴다. 익숙하고 편한 것에 안주할 때 사고방식 역시 고정되고 고착화되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 이민자, 난민들이 버려지고 배척받는 배경에는 자신의 안전과 편안함 때문이다.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무관심할 때, 자신은 편안할지는 몰라도 이웃에 대한 외면과 냉대는 ‘죄’인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10,29-37)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했던 사제와 레위는 타인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수용하지 않은 죄를 지은 것이다. 오늘날 무관심은 세계화되어 있고, 더 나아가 장벽문화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타인을 차단시켜 불편한 마음조차 삭제해버리고 있다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적하신다.

올해 본당 사목교서 주제로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공동체’로 정해 주님세례축일에 발표했다. 이 주제는 올해 서울대교구 사목교서에서 따온 것이다.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기 복음화’를 뜻한다. 자신이 복음화되지 않고 남과 세상을 복음화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는 격이다.(마태7,3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당신의 권고「복음의 기쁨」에서 ‘영적 세속성’을 지적한다. 그것은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93항)이다.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되는데 장애가 되는 ‘영적 세속성’은 결국 ‘십자가 없는 부활과 영광만을 추구하는, 편리하고 편안한 신앙’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새해를 맞아 아직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지만 올해에는 자발적인 불편함을 실천함으로써 자기를 복음화하고, 또한 이웃과 이 세상을 복음화하는 신앙인으로 깨어있는 삶이 되어야겠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