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화 ‘돈룩업’을 보았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혜성 충돌로 지구 멸망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위급한 상황에서 정치권력은 지지율과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위를 보지 마’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기업은 정경유착 관계를 이용하여 위기의 상황을 이윤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언론 역시 시청률이나 조회 수에 매달려 위기를 위기로 보도하지 않는다. 대중들도 소셜 미디어의 여론에 왜곡되거나 조작되어 연예계 소식이나 자극적인 밈(meme)에만 빠져 있다. 혜성 충돌이라는 진실은 외면되고 인류는 안타깝게도 멸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목한 점은, 혜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하기에 앞서 엄연한 과학적 진실을 마주하면서도 이를 회피한 사회 체제가 이미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고 마비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각각의 체제가 사회 공동선 실현을 위해 서로 연대하고 보조하기보다는, 거짓과 가짜가 난무하는 ‘탈진실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탈진실 현상이 얼마나 난무하는가? 여론에서는 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주장의 영향력이 크고, 정치에서는 정책보다 포퓰리즘과 정쟁에 치중하는 경향이 심하다. 더군다나 대중화된 디지털 문화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공론장에 탈진실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 시대에는 진리와 도덕보다는 정서와 신념이 앞서고, 엄청난 정보, 파편화된 정보 속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된 경향이 두드러진다.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를 끊임없이 예고해왔지만,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수차례, 기후위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2019년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고 이듬해 미국은 실제로 탈퇴한 바 있다.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환경 파괴 등으로 폭풍, 산불, 홍수 등의 전례 없는 재난을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언론은 왜곡되고 조작된 뉴스, 가짜뉴스로 신뢰가 실추되고 공공성과 공익성이 상실된 상업화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현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지난 달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앞날이 창창한 두 젊은이의 사례가 명증한다. 교통사고만 나면 달려오는 레커차처럼 ‘사이버레커’로 불리는 악의적인 유튜버들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 이에 호응하는 누리꾼들의 무분별한 악성댓글 놀이, 그리고 다시 이런 콘텐츠를 등에 업고 기사를 양산하는 무책임한 언론이 공조한 불행한 결과다. 영화 ‘돈룩업’에서처럼, 사회체제의 고유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끔찍한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21세기 몰개성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가 설 자리를 잃고 개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사회체제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1인 가구가 득세할수록 더욱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개인으로 산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우산 속에서는 권리의 주체로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진 ‘진정한 개인’이 아닌 대중 혹은 소비자로 규정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소셜 미디어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대중은 과연 탈진실에서 자유로울까? 소셜 미디어는 어떠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정보임에도 오로지 ‘좋아요’의 숫자가 많을수록 정보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사실인양 받아들인다. 또한 ‘좋아요’가 많은 정보만을 클릭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확증편향은 강화된다.
그러니 영화 ‘돈룩업’에 나오듯이 과학적 사실도, 객관적 진실도 천대받는 현상이 현실 세계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탈진실 시대를 겨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지적을 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나약함을 악용하고 사람들에게서 가장 나쁜 것을 끌어내려고 설계된 디지털 세상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모든 형제들」, 205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