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말 예루살렘·팔레스티나 순례 여정, 편지 형식으로 기록 보기 드문 고대 여성 저술가 작품… 초기 교회 전례 모습 담아
이 책을 추천한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는 무엇보다 ‘전례’ 부분에 주목했다. “일기 형식으로 각 지역에서 거행된 전례에 대해 그날그날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며 “교회 전례에 관심 있는 분들과 본당에서 전례 봉사하는 분들이 오늘날 우리가 참례하는 여러 전례의 뿌리와 역사를 체험하고 그 전례의 특성과 의미, 또 형식과 내용을 이해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한 문 주교는 아울러 “이 순례기가 교부학을 전공한 안봉환 신부(스테파노·전주 문정본당 주임)에 의해 근래에 번역돼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소개된 것이 기쁘다”고 전했다. 문 주교가 책에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오늘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모습을 담은 ‘대(大)주간’ 장면(97쪽 31항 2~3)이다. 여기서는 제11시 정각(오후 5시)에 어린아이들이 종려나무와 나뭇가지를 들고 주님을 맞으러 나가며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어라’하고 외치는 복음 구절을 낭독하는 장면, 곧바로 주교와 온 회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올리브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생생히 묘사된다. 문 주교는 “4세기에 에게리아가 예루살렘을 순례하며 기록한 당시 전례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에 그대로 녹아있다”며 “우리 교회가 초기 교회부터 거행한 소중한 전례의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밝혔다. 또 “에게리아가 당시 어려운 여행 상황 속에서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한 자료가 1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승돼 내려오는 사실이 놀랍다”고 덧붙였다. 책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순례’에 대한 의미다. 지금도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지역으로 순례 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4세기에 여성의 몸으로 유럽에서 중동으로 떠난 것은 모험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저자 에게리아의 종교적 신분이나 출신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부인’(domina)과 ‘자매’(soror) 용어가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보면 신실한 신앙으로 수도원에 모여 살거나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귀부인으로 추정된다. 에게리아는 순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과 염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겸손함과 사랑 그리고 순례에 대한 여러 상황에 대해 진술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의 길을 떠난 심정은 신앙의 힘과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신뢰로 풀이된다. 그는 순례하는 동안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등의 표현을 쓴다.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묻어난다. 한 여인의 하느님에 대한 목마름, 성경 속 사건과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묵상하려는 갈망이 비치는 이 책은 성지순례를 떠나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한다.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