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소만을 바랐던 소녀, 주님 자비의 빛 전하는 등불 되다 축일 10월 5일 경제 사정으로 어려웠던 유년 시절 수녀회 입회 이후 예수님 환시 체험 ‘하느님의 자비’ 상본으로 새기고 주님 자비 신심 알리는 소책자 발행 희생 바친 삶 통해 기쁨과 평화 전해
하느님 자비 환시 체험
1931년 2월 22일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나셨다. 자신을 ‘하느님 자비의 임금’이라고 소개한 예수님께서는 흰옷을 입고 있었고, 한 손으로 심장 근처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을 내밀어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장 근처에서 붉은 색과 흰색 두 갈래 빛이 퍼져 나왔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서 이웃에게 자비를 전하는 모범,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한 하느님 자비를 강조하는 도구가 될 것을 당부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예수님의 환시를 본 것을 기록한 책 「내 영혼 속 하느님의 자비」(Divine Mercy in My Soul)에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날 저녁, 내 방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흰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손을 펼쳐 축복하고 계셨고, 다른 한 손은 가슴 쪽의 옷 부분을 잡고 있었다. 가슴 쪽에서는 두 개의 커다란 빛이 나왔는데, 하나는 붉은 색이고 다른 하나는 흰색이었다. 침묵 속에 주님을 바라보니, 내 영혼은 두려웠지만 기쁨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는 내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말을 적도록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 하느님 자비의 상본을 부활 다음 주일에 기념하도록 하고, 그날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파우스티나 수녀는 자신이 본 그리스도의 모습을 어떻게 상본으로 새겨야 할지를 몰랐다. 동료 수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하느님 자비의 상본은 3년 후 빌뉴스에서 소임하며 만난 미카엘 소포코 신부의 도움을 받아 처음 그려졌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빌뉴스 수도원에서 고해사제로 사목하던 소포코 신부에게 자신이 본 환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포코 신부는 처음엔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주는 등 파우스티나 수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 후 파우스티나 수녀의 환시가 진실임을 믿은 소포코 신부는 이후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 수녀가 예수님과 한 대화를 기록하도록 했고, 이를 모은 것이 「내 영혼 속 하느님의 자비」다.1936년 파우스티나 수녀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다. 결핵이 재발한 것이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프라드니크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며 일기를 쓰고 기도했다. 특히 모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다. 1937년 처음으로 하느님 자비의 상본이 인쇄됐으며,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알리는 소책자 「자비의 임금 그리스도」가 발행되는 등 그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건강이 악화되며 환시를 보는 횟수가 많아졌지만 파우스티나 수녀는 계속 기도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말년에 크라쿠프로 이송됐고 1938년 10월 5일 선종했다. 그리스도를 따른 파우스티나 수녀의 삶은 희생으로 점철됐다. 주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고통을 주님께 바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이웃에게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며 하느님의 자비를 전했으며,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저서를 통해 신자들이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4월 30일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 강론에서 “우리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비의 메시지가 매우 필요하다”면서 “파우스티나 수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자비의 메시지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주님 부활 대축일의 복음을 보다 심도 있게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에게 커다란 빛을 주는 은사이며 하느님 자비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 모든 사람에게 큰 빛으로 드러난다”고 전했다.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