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효명중학교에서 교목활동을 하고 있는 채유호 시몬 신부입니다. 신부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교목쌤, 선생님 등으로 불립니다. 교목신부로 살겠다는 특별한 뜻을 제가 처음부터 지니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우연치 않은 부르심에 그저 순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저의 학교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임 첫날 학교 일정을 마무리하고 사제관에 들어와 겨우 이부자리 하나 펴놓고 잠자리에 들기도 했고, 같은 일정이지만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중학교 교목신부로는 처음 파견돼 ‘무조건 잘해서 자리매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압박하며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힘들고 벅찬 순간이 찾아올 때면 ‘하느님도 무심하시지!’라는 원망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고민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로는 인간적인 나약함을 마주하며 하느님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차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나를 교목신부로 부르신 하느님의 뜻을 찾기 시작했고, 다음의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하느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좋은 어른으로서 살아가도록 저를 부르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어른이란 ‘삶의 지혜를 보여줄 수 있고, 때로는 인내하며 품어줄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좋은 표양이 되는 존재라 생각했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자가 되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행복한 삶을 살라고 저를 부르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는 희로애락이 온전히 묻어나는 공간이자 작은 사회입니다. 학생들은 작은 것 하나에도 기뻐하지만, 반대로 작은 것 하나에도 큰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실의에 빠지는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자해를 통해서 자신을 해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행복한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저부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저에게 이런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저희 학교에 정말 좋은 영향이 마구마구 전파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이렇게 좋은 어른을 만난 건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편지를 읽다 울컥하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를 통해 이 친구가 하느님을 만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