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지 않아도, 사랑의 손길 내미는 것이 진정한 자선입니다” 과거 원조 받았던 한국교회 그 사랑 돌려주는 보답해야 난민 지원 등 해외 원조 사업 ‘카리타스’ 정신으로 협력 필요 “향후 대북지원 해법 찾았으면”
한국교회는 1992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1월 마지막 주일 2차 헌금을 해외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해외 원조 사업을 시작했다. 과거 도움을 받는 교회에서 돕는 교회로 발돋움한 지 30년이 넘어섰다. 2023년 1년 동안 33개 국가 59개 해외 원조 사업에 한화 46억8089만9397원(미화 352만5876달러)을 지원했다. 이제는 해외의 어려운 교회와 지구촌 이웃을 돕는 일이 신앙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재단법인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으로 선출된 후 처음 해외 원조 주일을 맞이하는 조규만 주교를 만나 해외 원조의 필요성과 신자들에게 요청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들어봤다.해외 원조 왜 해야 하나
조규만 주교는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첫 해외 원조 주일을 맞이하는 소감에 대해 “주교로서 어려운 사람들 돕는 기구를 맡는 것은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 원조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갖는 의미는 과거 우리가 가난할 때 외국에서 원조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보답하는 것에서 찾았다. “우리가 가까이에 있는 어려운 이웃도 돕겠지만, 우리끼리만이 아니고 범위를 확대해 국경과 인종, 종교를 넘어 돕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6·25 전쟁 때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교황청으로부터 한국교회 모든 교구가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국교회와 독일 카리타스에서도 한국교회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조 주교는 6·25 전쟁 후 평양대목구장 서리였던 조지 캐롤 몬시뇰, 1953~1957년 주한 교황사절로 재임했던 전 춘천교구장 토마스 퀸란 주교의 노력으로 미국과 교황청에서 구호금과 엄청난 구호물자가 한국교회에 전해졌고,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배고픈 신자들과 고아원, 양로원 등이 큰 도움을 받았던 교회상도 소개했다. 조 주교는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성장하는 데에는 교황청이 한국교회 사제 양성을 적극 지원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한국의 많은 교구 신학생들이 로마에서 유학할 때 학비와 생활비를 거의 다 교황청에서 지원했습니다. 저도 서울대교구 사제로 있다가 1984년에 로마로 유학 가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교황청에서 모든 생활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우리가 도움 받았으니 도와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도움 안 받았어도 도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인데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 있어서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조 주교는 해외 원조 사업 중 무려 1억 명이 넘는 난민 지원에 대해서도 “우리가 재력이 풍부하지 못해 다 돕지는 못하더라도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와야 한다”며 “한국교회 단독으로 하기 힘든 일은 나라마다 있는 카리타스 기구를 통해 신자들의 후원금이 가장 공평하고 신뢰할 수 있게 지원되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주교는 일부 신자들이 국내 어려운 이웃을 먼저 도와야 한다며 해외 원조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자선은 남아서 돕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해외 원조를 한다고 국내 어려운 분들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닙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국내에서도 사회복지 사업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많은 분들을 돕고 있지만, 국내 먼저 돕고 남으면 해외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선은 부족한 형편에도 돕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넉넉하지 않으면서 더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카리타스 실천은 사랑의 정신으로 해야 조 주교는 해외 원조를 포함해 자선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카리타스’라는 말 그대로 ‘사랑’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복지계를 보면 명칭에는 사랑을 드러내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생색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 돕는다는 명분으로 ‘자기 복지’를 하는 이들도 있고, 기구나 시설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조 주교는 사제와 수도자들에게도 애정 어린 충고를 남겼다. “카리타스라는 의미처럼 사랑이 중요합니다. 자선사업이나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제나 수도자들도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직원들의 눈에 사제나 수도자라기보다 ‘국장’, ‘과장’ 같은 중간관리자로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성찰하지 않으면 관리자로 전락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 주교는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대북지원이 최근 남북관계가 막히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그동안 대북사업으로 많은 지원을 했지만 최근 남북관계 경색으로 어떻게 도울지 방법을 못 찾고 있습니다. 한국카리타스 이사님들과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북한을 직접 돕지는 못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을 도울 방법은 없는지 찾고 있습니다. 대북지원은 교회가 정치적으로 앞장서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나라 카리타스를 통해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 정국이 풀리면 북한을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규만 주교는 “자선은 한 마디로 정의하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며 “인종과 민족, 나라가 달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한 형제자매라는 마음으로 다른 나라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