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흥식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대전교구장)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에 귀기울여주길
여야를 넘어 모두에게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민심은 준엄했습니다. 그것은 천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4월 13일은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축제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선거에 뛰어든 후보자는 물론, 많은 관심과 책임감으로 선거에 참여한 국민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선거에 즈음한 담화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공동선과 정의와 평화에 기여하는 깨끗한 일꾼을 뽑아달라고 신자들에게 호소하면서 우리는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들은 이런 열망과 기도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4년 8월 14일 청와대에서 공직자들에게 하신 당부 말씀을 인용해 드립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국가와 정치의 지도자로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더 나은 세상, 더 평화로운 세상,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화되는 세상 안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은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 휩쓸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진해 온 것 같습니다. 가톨릭신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신자의원의 비율은 높았지만, 신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복음정신으로 일하는 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차별 없이 함께 잘 살아가는 복음의 정신이 당리당략보다 후순위로 밀려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대 국회의 형제자매 의원들께서는 정치인으로서 가톨릭신자임을 이용하지 마시고, 가톨릭신자로서 정치하는 봉사자가 되어 주어주십시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8)는 말씀처럼, 여러분의 활동이 복음을 담는 성전이 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겸손히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 주십시오.
또한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처럼 양분화 되어 이념이 다른 편을 서로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병폐가 교회 안으로까지 파고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포로가 된 교회의 아픈 모습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신자 의원들께서는 부디 갈등과 미움을 가져오는 씨앗이 되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남북의 불화와 남남 갈등을 치유하는 ‘대화의 정치인’이 되어 주시길 청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좋은 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형제자매 여러분을 선교사로 국회에 파견합니다. 특정 이념과 사상, 정파적 이익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신자로서 사회교리를 비롯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무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은총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 사이의 친교와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회 안에 조직되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 ‘다산회’와 ‘일치를 위한 정치 모임’에 적극 참여하시기를 권고합니다. 같은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로 뒷받침하
는 여러분들의 ‘후원자’, ‘기도 부대’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사랑하는 국회의원 형제자매님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한 분 한 분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사랑 중의 사랑인 ‘사랑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도합니다. 보람 있는 의정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셨음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