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간 청주교구 성장 이끌어
정 추기경은 교구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서 순교 영성에 주목했다. 박해기 교우촌이자 가경자 최양업 신부와 선교사들의 사목 활동 거점이었던 배티성지의 땅을 확보하고 성역화에 박차를 가했고 1999년 양업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사목과 사회복지는 정 추기경의 한결같은 관심사였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사회사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수도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정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수도회들의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병들고 약한 이들을 위해서 병원도 필요했다. 가난한 교구의 재정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정 추기경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1998년 3월 청주성모병원을 개원했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고생을 모두 잊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그러던 중 정 추기경은 주한 교황대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28년 동안 교구장으로 재임하며 지역 복음화율과 신자 대비 본당 수, 사제 수 등에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이끌었던 청주교구를 떠나게 됐다.
■ 새 천년기 사목 쇄신
정 추기경은 새로운 세기를 코앞에 둔 1998년 4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 그해 6월 29일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착좌식이 거행됐다. 정 추기경은 이후 2012년 6월까지 14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직을 수행하며 서울대교구의 새로운 면모를 다지고 새로운 천년기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정 추기경은 교구 시노드 개최로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 교회의 쇄신을 지향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친 친교의 교회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비 단계(2000년)·준비 단계(2001~2002년)·본회의 단계(2003년) 등 4년에 가까운 회의 여정을 거치며 논의한 내용들은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로」에 담았다. 총 208쪽 분량의 이 교서는 새천년기를 향한 서울대교구의 청사진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세상 안에서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나침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노드를 통해 종합되고 확인된 변화와 쇄신의 여정을 걸어가던 2002년,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사목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을 공포했다. 이는 교회 대형화의 문제를 해소하고 친교와 일치를 바탕으로 하는 복음적 공동체를 위한 지역 중심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 제도, 지구장 중심 교구 운영, 공동 사목 등의 사목적 조치들로 구현됐다.
■ 가정과 생명
청주교구장 시절부터 가정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정 추기경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시대, 교회를 생명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했다. 그 첫걸음이 생명위원회의 설립이었다.
당시, 산업과 결탁한 의학과 과학은 무분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나섰다. 정 추기경은 “인간 배아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인 행위”임을 강조하고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발족하는 동시에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1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생명위원회는 교회의 인간 생명 수호 노력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생명운동을 펼쳐왔다.
정 추기경은 그밖에도 서울대교구장 재임 시절 문화의 시대에 걸맞게 명동대성당 일대를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면서 민족화해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파주시에 민족화해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