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 수사님이 지난 대림시기부터 일본교회에서 새 「로마 미사 경본」을 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미사 전례를 라틴어가 아닌 각 나라의 언어로 거행하도록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각 지역교회는 전례에 사용하는 미사 경본도 자기 나라 고유의 예법과 어법에 맞춰 「로마 미사 경본」을 번역해 쓰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2017년 대림시기부터 「로마 미사 경본」 제3표준판(2002년)과 수정판(2008년)에 따른 새 미사 경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본교회에서는 그 작업이 이번에 이뤄진 것입니다.
수사님이 일본교회의 새 전례문에서 바뀐 부분을 몇 가지 설명해 주셨는데, 전례 언어인 라틴어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각기 어떻게 번역하는지 비교도 되고, 그 안에서 각 지역교회의 신앙의식도 살짝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두 부분을 소개해 봅니다.
먼저 미사 때 주례사제와 신자들이 주고받는 ‘인사’ 부분에서 예전에는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라고 했었는데, “또한 당신과 함께”라고 응답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원래 라틴어 전례문을 직역하자면 ‘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Et cum spíritu tuo)’인데, 일본교회는 ‘당신’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영’이라는 말은 뺐고, 한국교회는 ‘영’이라는 말은 그대로 옮겼지만 ‘당신’이라는 말은 ‘사제’로 의역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당신’ 대신에 ‘사제’로 번역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대를 드러낼 때 ‘너’나 ‘당신’이 아니라 직함을 부르는 문화적 관습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님의 기도’도 본래 성경 원문에서는 ‘아버지’라는 말이 처음 호칭으로 한 번 나올 뿐이고 이후에는 모두 ‘당신(너)’으로 지칭되는 대명사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모두 ‘아버지’로 번역했습니다. 게다가 예전에 쓰던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던 것을, 가톨릭 새 성경에서는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라고 바꾸었습니다(마태 6,9). 우리 자신을 더 낮추어 하느님을 부르는 셈이지만, 지나친 존대와 경칭이 자꾸 반복되면서 신앙 안에서의 관계마저 위계적인 문화와 정서가 늘어나는 건 아닌지, 문득 물음이 올라옵니다.
일본교회의 새 전례문 해설에 따르면 일본의 일상문화에서도 상대를 ‘당신’이라고 직접 부르는 것은 흔치 않지만, 라틴어 전례문의 표현 그대로 쓰면서 그 말에 익숙해지자고 설명합니다. 일본교회의 기도문이나 전례에서는 경칭이 자주 쓰이냐고 그 수사님에게 여쭤보니, ‘주님’, ‘예수님’, ‘성모님’이라는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님’이라는 경칭을 자주 쓰지 않고 ‘주’, ‘예수’, ‘성모’라고 더 많이 부른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곁에서 듣던 누군가가 한국교회는 신학생도 ‘학사님’이라고 부르는데, 일본교회의 전례 언어가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좀 더 평등하고 위계의식을 줄이는 교회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는 의견을 나눕니다.
또 하나 일본교회의 새 미사 경본은 ‘참회’ 예식에서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를 “형제자매들에게 고백하오니”로 바꾸었습니다. 라틴어 전례문에도 ‘형제들(fratres)’로만 나오지만, 일본교회에서는 일부러 ‘자매’라는 말을 넣은 셈입니다. 일본교회가 원문에도 없는 여성을 포함하는 문구를 추가한 이유는 따로 설명이 없어도 그 지향과 의도가 가히 짐작됩니다.
기도와 전례문뿐 아니라 우리가 교회 안에서 쓰는 언어가 담아내는 신앙 문화는 어떠한지, 좀 더 새로운 말과 표현으로 바꿔보면 좋을 것들은 무엇인지, 일본교회의 새 전례문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