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공동기획]
사형제도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위원장 김선태 요한 사도 주교)와 공동기획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Q&A를 10회에 걸쳐 연재, 그리스도인답게 세상을 보는 시각을 톺아봅니다.
법정은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판사도, 검사도, 살인범을 호송해 온 헌병도 가슴이 얼어붙었지요. 사람을 죽여 통속에 콘크리트로 굳혀 버리기도 하고 강물에 돌을 매달아 던지기도 하고. 저 자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형기 마치고 나오면 무슨 보복을 당할까 다들 두려워한 겁니다. 그를 추궁해서 억울하게 공범으로 몰린 의뢰인의 무고함을 밝혀야 하는 내 처지가 정말 한심했지요. 오랫동안 사형제폐지운동을 해 온 나에게도 그 살인범은 심각한 도전이었습니다.
‘저런 놈도 사람인가. 죽여 마땅하지. 살아서 나오면 또 악행을 저지르겠지. 회심시키는 건 절대 불가능하지.’ 내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상대방이 토론 때 나를 논박하는 말을 내가 그대로 되뇌고 있는 겁니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 변호사, 거 TV에 나와서 이성적인 말로 백날 설득해 봤자 사람들 감정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어. 그냥 법으로 폐지하는 수밖에.”
헌법 제10조는 우리 감정과 정반대로 흉악범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형제도는 범죄예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무수합니다. 악인이 모처럼 교도소에서 착한 이가 되었을 때 죽이는 사형은 또 하나의 살인입니다. 대다수 나라가 이미 사형제를 폐지했습니다. 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이런 이성적 논거를 들어 2019년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 위헌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2022년 공개 변론까지 하고, 될 듯 될 듯 기대를 해 오다가 그만 재판관들이 대부분 바뀌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국회도 과반수가 넘는 의원들이 사형제폐지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법사위 문턱에 걸려 본회의 표결도 한 번 못 해보고 15대 국회에서 지난 21대 국회까지 23년여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이 사형제폐지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사형제폐지가 가입조건인 유럽연합은 우리와의 조약을 통해 사형을 시키지 않는 조건으로만 범인을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유럽에서 잡힌 살인범은 안 죽이고 우리나라에서 잡힌 범인은 사형에 처한다면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997년 12월 23명을 처형한 이래 27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입니다. 이제 우리 가톨릭신자들부터 사형제도의 법적 폐지에 앞장설 일입니다. 대안은 상대적 종신형입니다.
신자들이 지켜야 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67항은 이렇습니다.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치며 단호히 전 세계의 사형제도폐지를 위하여 노력한다.”
흉악범을 미워하는 나는 오늘도 이런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께 감복하여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 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며,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한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 5, 45)
글 _ 김형태 요한(변호사·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