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르포] 이주노동자들의 회복 쉼터, 서울대교구 ‘베다니아의 집’
각자의 사정으로 고향과 멀리 떨어져 삶을 일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른 봄을 시샘하는 3월의 꽃샘추위는 더 시리다. 그중에서도 일터에서 부상을 입거나 질병까지 짊어진 이주노동자들은 더 고된 봄을 보내는 중이다. 법적인 보장은 열악한 반면 이들을 보호하고 다시 일하도록 돕는 시설은 적다. 서울 명동에 자리한 ‘베다니아의 집’(운영장 황 시메온 수녀)은 다쳐 병원 치료가 필요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사순을 함께하고 있다.
다친 이들의 안식처이자 징검다리
일하다 한쪽 다리를 잃고 치료 후 베다니아의 집에 입소한 청년 필립보(33) 씨는 “고향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고 한국에 왔다”고 전했다. 한국의 한 파이프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힘든 시기 베다니아의 집에 입소해 요양을 하며 지금은 새 꿈을 위해 직장을 구하고 있다.
베다니아의 집에는 3월 현재 필립보 씨를 포함해 5명의 이주노동자 청년들이 머무르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국적도 다양하고, 비교적 가벼운 디스크 환자부터 필립보 씨처럼 신체 일부를 절단한 중상자도 찾아온다.
이주노동자들은 베다니아의 집에서 병원으로 통원치료를 하거나, 이미 병원에서 수술 등 치료를 마치고 다시 취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구직활동에 전념한다. 외부의 일반 숙소와는 달리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이곳은 사회로부터 종종 받는 따가운 시선에서 떨어져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베다니아의 집은 이들이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교회 밖 이주노동자 쉼터가 한달, 3개월 등 규정을 두고 있는 데 반해 비영리단체인 베다니아의 집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비교적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다.
황 시메온 수녀(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서울관구)는 “특수한 경우 2년 넘게 머무른 친구도 있을 만큼 시설 재량으로 이들을 더 머물게 할 수도 있다”며 “다친 이 이주노동자들이 치료나 수술을 받고 퇴원하면 병원비 지불은 물론이고 숙식을 위해 고시원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홀로 외국에서 온 이들에게 3개월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다니아의 집은 거주하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들이 24시간 상주하며 돌본다. 새벽이라도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119를 불러 의료기관에 인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부터 출입국 등 법률 지원까지
이주노동자는 말 그대로 외국인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되는 범위가 내국인에 비해 좁다. 병원비, 비자발급·재발급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하지만 한국어 일상대화를 간신히 익히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복잡한 행정절차를 알리 만무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에 불리하다. 게다가 직장에서 신체를 다치기라도 하면 당장의 고통은 물론이고 한국에서의 불투명한 미래까지 떠안고 만다.
베다니아의 집은 이주노동자들이 머물 공간만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와 연계해 비자발급과 요양 후 출국을 지원하기도 한다. 베다니아의 집에 오는 이주노동자는 주로 인도적 체류 허가 비자인 G1 비자를 발급받고 국내에서 일하다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인데, 병원 치료와 비자 연장 등 이들이 하기에 복잡한 업무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종종 황 수녀가 직접 병원에 동행해 의사와 만난다. 국립병원이나 교회 밖 이주민 쉼터 등 기관에서 베다니아의 집에 이주노동자를 인계하는 경우도 많아 면담 등을 통해 입소하기에 적절한지를 판단한다. 여러 방법을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해외에서는 치료가 힘든 질병부터 희귀병까지 안고 있기도 하다. 이미 입소한 이주노동자들도 틈틈이 수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 상태를 공유한다.
따가운 시선 극복하고 바깥으로
베다니아의 집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불편한 시선은 이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다.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편견이 이들을 더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많은 이주노동자를 경험한 황 수녀는 “난민 신청자들도 입소하기도 하는데, 난민은 전쟁 난민, 기후 난민 등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어 한 부류로 정의하기 힘들다”며 “또 난민이 모두 범죄 가능성이 높은 가난한 이들이라는 것도 편견”이라고 했다.
한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짚었다. 황 수녀는 “이주노동자들이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은 법적으로 제한돼 있어 한국인 구직자와 취업을 놓고 경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오히려 한국인이 꺼리는 업종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이 자리를 채워 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퇴소 후 한국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든 출국해 새 삶을 살든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황 수녀는 반가울 따름이다. 황 수녀는 “저축도 할 줄 모르던 청년들이 생활이 안정돼 연락이 오기도 한다”며 회상했다. 현재 베다니아의 집에서 머무르는 이들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꾸준히 면접을 나가며 그들의 ‘사순 시기’를 극복해 나간다.
필립보 씨는 입소 후 세례를 받은 교회 새 식구이기도 하다. 그는 “한쪽 다리만으로도 일할 수 있는 직장에 면접을 보고 있고, 나름대로 자기소개서도 작성했다”며 “이곳 수녀님들 덕분에 희망을 이어나가며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