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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서울 보좌주교 탄생] 내가 본 손희송 주교- 대신학교 입학 동기 박일 신부

박일 신부 (서울 동성고등학교 교장 )
입력일 2015-07-22 수정일 2015-07-22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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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나누던 따뜻한 사목자”
“박 신부, 나 벼락 맞았어!”

느닷없는 전화 속 손희송 신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교 임명 공식발표 몇 시간 전. 벼락 맞은 사람 옆에 있다가 저도 감전된 듯 잠시 할 말을 잃었고 축하한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시키시는 일에 잘 순명했다고 간신히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손 주교님께는 소신학교 때부터 주교감이라는 기대와 격려의 감탄사가 따라다녔습니다. 대신학교에서도 모범적 생활과 첫째자리를 놓치지 않던 학업,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또한 신학교 알마(Alma)축제 때는 연극에도 참여하는 등 참으로 균형 잡힌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장학생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유학을 떠나셨지요. 생각해보면 진작 주교직에 올라야 될 분이 너무 먼 길을 돌아오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하느님의 섭리는 나중에야 간신히 감사와 찬미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손 주교님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깊은 신앙심을 심어주시고 참된 가정교육을 베풀어주신 부모님입니다. 두 분 모두 구교우 집안 출신으로 강원도 횡성 풍수원본당 소속으로 1956년 경기도 연천으로 이사를 오셔서 공소를 개척해 회장직을 수행하시다가 아버님 뒤를 이어 어머니께서도 공소회장을 하셨답니다.

또 깊은 인상을 받은 점은 뛰어난 분별력입니다. 사실 그 분별력은 사랑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여러 사정이나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에서, 교의신학 전공자로서의 소양을 바탕으로 한 지극한 교회정신에서, 평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과 동료 사제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사재를 털어 기꺼이 기부하고 또 도와주던 가난과 나눔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손 주교님은 깊은 사목적 관심을 지니고 깊이 있고 활발하게 소통을 할 줄 아는 분입니다. ‘싸이월드’에 방을 열고 많은 청년들, 신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으며, 오프라인에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참으로 많은 분들과 삶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늘 나누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강의와 논문에서도 엄정하고 깊은 소양으로 제자들을 가르쳐왔고, 학술활동을 활발히 펼치면서도, 평범한 이들을 위한 사목적 관심도 함께 보이면서 평화방송에서의 신앙상담, 그리고 대중적으로 쉽게 읽힐 수 있는 수많은 저서들을 펴내는 등 폭넓은 사목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또 신학교 교수로서, 미래의 사제는 신학생들이 잘 습득하기를 바라는 뜻의 전통적 상징인 모토 3S(Sanctitas 성덕, Sanitas 건강, Scientia 학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소통을 잘하는 사제, 공동체를 건설해나가는 중심에 있는 사제여야 한다는 뜻에서 Socialitas 통교를 포함, 앞으로는 4S를 닦아야 한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좋은 인품의 주교님을 모시게 된 것은 하느님의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좋은 친구요 뜻을 함께 나누던 좋은 동료로 지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 존경심을 일으켜 오신 손 주교님이 이제는 더 많은 이들과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뜻을 함께 나누어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더욱 커나가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손희송 주교(가운데)에게 박일 신부가 수단을 입혀주고 있다. 박일 신부 제공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있던 손 주교가 동료 신부들과 대만 연수 중 기념촬영하고 있다. 박일 신부 제공
2006년 대신학교 교정에서 월드컵경기를 관람하며 고(故) 김수환 추기경 등과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있는 손 주교. 박일 신부 제공

박일 신부 (서울 동성고등학교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