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60년 넘게 피아니스트라는 외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혹자는 선생님을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다소 철학적이며 신앙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음악인으로서, 피아노 연주가로서 살아온 삶의 여정을 회고하신다면.
-피아니스트 백건우 (이하 백건우) : 피아니스트의 삶은 선택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하다보면 하느님의 힘이 존재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작곡가가 곡을 쓰고 연주가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등 모든 음악이 인간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특히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는 건 인간을 뛰어 넘는 어떤 힘이 뒷받침 해주는 덕분이지요.
▲장 국장 : ‘건반위의 구도자’란 말의 의미는 ‘깨달음을 구하는 자’로 통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깨달음이란 ‘하느님 말씀을 완전히 체득’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건우 : 본질에 충실한 사람이면 누구나 구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 본질적인 목소리를 찾는 것인데, 모든 예술가는 본질을 추구하고 싶어 하거든요. 저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본질은 ‘신앙’이겠죠.
▲장 국장 : 음악과 종교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크 시대의 거장 바흐나 헨델과 같은 유명 음악인들도 신앙심이 깊었고, 그들의 음악 영역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앙이 백 선생님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또 끼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백건우 : 음악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언어라고도 생각합니다. 다른 종교인들이 보기에는 ‘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꼭 기도합니다. ‘오늘 이 무대를 내 힘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으니 하느님께서 끝날 때까지 도와 달라’고 말이죠. 늘 성수와 십자가를 지니고 다니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모든 곡을 하느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연주합니다.
▲장 국장 : 곡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일 듯 한데요. 신앙의 절대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선(善)과 정의를 주로 다루실 것 같기도 한데요.
-백건우 : 예술은 선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내용처럼 음악에 악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다만 연주자가 선택을 하는 것이죠. 선만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은 음악으로서 완벽하진 않을 겁니다. 절대자에 따르는 해석도 하지만 때론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인간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장 국장 : 흔히들 피아노 연주는 테크닉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곡을 해석하고 연주하는 데에는 신앙과 철학이 더해져야 진정한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건우 : 위대한 예술가와 그냥 피아니스트의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냥 피아노를 잘 치면 피아니스트, 단순한 연주를 넘어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깨달으면 음악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음악을 초월해 그 이상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 음악을 깨닫지 못하는 음악인들도 굉장히 많답니다.
▲장 국장 : 가톨릭 성가 연주는 하지 않는 걸로 압니다.
-백건우 : 하지만 모든 음악에 신앙과 삶, 인간성이 다 녹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13번 2악장이 죽은 아이를 껴안고 있는 부모의 아픔을 위로하는 곡인데요, 베토벤이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노래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모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베토벤의 마음은 성스럽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월호 참사 추모공연 때 제가 그 곡을 연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건우 : 하지만 모든 음악에 신앙과 삶, 인간성이 다 녹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13번 2악장이 죽은 아이를 껴안고 있는 부모의 아픔을 위로하는 곡인데요, 베토벤이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노래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모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베토벤의 마음은 성스럽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월호 참사 추모공연 때 제가 그 곡을 연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