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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노(老) 사제의 고백록 / 맹광호

맹광호(이시도로) 수필가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9-09-16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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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계신 92세의 노(老) 사제, 김창렬 바오로 주교님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나의 작은 고백록’ 이라는 머리제목을 붙인 「못다 한 이야기」라는 책이다. 20년간 제주교구 교구장을 지내시고, 2002년 퇴임하신 이후 지금껏 은수자(隱修者) 생활을 해 오시며 이미 여러 권의 묵상집을 출간한 주교님이 지난해 12월에 내신 책이다. 연세가 연세인 만큼 책을 내실 때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말씀과 함께 펴낸 책들은 모두가 하느님께 대한 당신의 절절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다.

주교님은 1953년 26세 되던 해 서품을 받으시고, 1965년 38세에 나의 모교인 가톨릭대학의학부장 겸 성모병원원장으로 부임해서 18년간을 가톨릭중앙의료원 최고 관리자로 사목하셨다. 이후 1983년 제주 교구장으로 임명받아 가셔서 35년 동안 교회 고위 성직자인 주교로 사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이룩한 성과나 신앙적 삶에 대한 자신감을 표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능력이 없는데도 하느님께서 늘 주위의 유능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도와주게 하셨다”라고 씀으로써 모든 공을 하느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곤 했다.

고백컨대, 나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어떤 ‘초월적 진실’을 접했을 때 대체로 그것을 외면하는 삶을 살아온 편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진실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마음에 이는 갈등 때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적 진실이란 가령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은 성경 말씀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다분히 신앙적 행동지침 같은 말이나 글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런 진실을 외면하려고 해온 것은 뭐랄까 하느님의 전능한 힘에 대한 신뢰와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종적 자세보다 내가 ‘주체’가 되어 그런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는 오만한 마음에서 비롯한 과오였음이 분명하다.

주교님의 이번 책 머리말 한 구절이 가슴을 울린다. “예수님은 늘 당신 자신이 아니라 남을 감동시키는 말씀을 하신 분이다. 그런데 나는 남을 감동시키지는 못하고 나 혼자만을 감동시키는 말을 해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어쩌면 읽는 사람은 감동시키지 못하고 내 멋에 겨워하는 말이 될 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한길에다 멍석을 펴놓고 제멋에 겨워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제멋대로 흔들어대는 내 춤의 주제는 ‘홀로 위대하신 하느님’이다. 내가 감히 바라는 것은 내 멍석에 올라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가는 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며칠 전, 후배 교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날씨 좋은 3월 중 하루를 골라 주교님께서 서울엘 오시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대학 재직시 주교님과 가깝게 지냈던 몇 사람이 주교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다. 모임에 가는 날, 남의 식당에 멍석을 갖고 가 깔지는 못하겠지만 주교님 앞에 내 손수건이라도 깔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다. 그래서 실제로는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사셨는지를 알려드리고 싶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맹광호(이시도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