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고향에 살던 때 일이다. 귀갓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을 헤집고 보니, 세상에! 늙수그레한 한 농부가 젊은 녀석들에게 얼척없이 당하고 있는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농부가 소달구지에 배 상자를 싣고 경사진 길을 땀 흘리며 넘어오는데, 녀석들이 달구지에 올라탄 것이다. 농부가 내리라고 사정하는데도 녀석들은 내리기는커녕 콧노래를 부르며 배 상자를 두들겨 댔다.
경사길을 다 올라서도 녀석들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화가 치민 농부가 후레자식들이라고 험담을 한 게 화근이었다. 녀석들은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배 상자를 내동댕이치고, 한 놈은 내려 고삐를 잡아채려 했다. 거리는 상자에서 쏟아진 배로 어지러졌고, 농부는 욕설을 퍼부으며 필사적으로 소 고삐를 휘어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그 목불인견의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섣불리 나섰다가 내가 당한다면… 하는 생각들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이 시간만큼은 힘센 남자가 아닌 것이 그처럼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저, 저런! 쯧쯧….”
사람들이 혀를 찼다. 악당들이 소를 돌려, 내려왔던 길을 다시 끌고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노한 음성이 총알처럼 거기 선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때린 건.
“야, 이 못된 놈들아!”
아,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고함을 지르며 뛰어든 건 이웃집 노부부의 애지중지 외아들 문수였다. 나는 아찔했다. 떡벌어진 어깨의, 셋이나 되는 악당들 앞에 문수는 문자 그대로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수는 작은 체구에 태도도 당당하게 악당들 앞에 서 있었다.
“너희들, 이게 무슨 짓이냐! 아저씨. 얼른 가세요.”
농부는 흩어진 배들을 주워 싣고 얼른 그곳을 떠났다. 악당들은 이 난데없는 침입자가 어린 학생이어서 실망한 눈치였다.
“이 쥐새끼만한 게 어디라고 까불어! 얌마! 너 정신 있어?”
한 녀석이 문수의 목덜미를 거칠게 잡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함을 느끼며 질끈 눈을 감았다. 피투성이로 나동그라진 문수 모습을 너무도 쉽게 떠올렸다. 나는 도저히 그리로 뛰어들 수 없는 가냘픈 내 모습을 보았고, 울고 싶은 비참한 심정이었다.
“이것 놓고 얘기해!”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문수는 멱살 잡은 손을 쳐내며 악당의 턱밑을 힘껏 갈겼다.
“아쿠!” 갑자기 급소를 맞은 악당이 쓰러짐과 동시에 두 녀석이 문수에게 잔인한 인상으로 달려들었다. 문수는 이미 녀석들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야, 이 짜식들아! 한판 붙으려면 이리 와!”
문수는 녀석들에게 손짓을 하며 삼십육계를 놓았다. 나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문수에 대한 염려를 놓을 수는 없었다. 그날밤 문수를 만났다.
“누나도 거기 있었어? 난 내가 죽더라도 그런 놈들 보면 못 참아….”
이런 문수가 잘못될까 봐 노상 걱정하던 부모의 염려와는 달리 문수는 착하고 건실하게 성장했다. 부모가 바라던 판검사는 못 되었지만 취업하여 노부모를 기쁘게 했다.
나는 지금도 눈꼴사나운 일을 보게 되면 그때의 문수를 되살리곤 한다. 정의감이란 생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릇됨을 보고 분개할 줄 알고 편하게 정의감을 나타낼 수 있는 세상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