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와 유다의 절규
“난 그를 모르오 결단코 그를 모르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 앞에 죄인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요한1서 1,8)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추려 할수록 커지는 것이 죄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둘 다 죄를 지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반석이 됐고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톨릭신문 창간90주년 기념 창작뮤지컬 ‘사도 베드로’의 작곡가 류선영(율리안나)씨는 ‘베드로와 유다의 절규’를 이중창으로 작곡했다. 이를 통해 두 인물의 신앙적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베드로 사도는 부족한 사람이었죠.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 큰 사랑을 받았죠. 그렇기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가 느낀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런데도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 앞으로 갔습니다. 용서를 청했죠. 그러나 유다는 자신이 생각한 예수님의 모습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님께 용서를 청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겠죠.”
죄책감은 죄의 무거움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그 무게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 죄로 인해 마음 아파하실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고 자비에 자신을 맡겨 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죄를 지었다면 숨지 말고 고해소로 달려가 하느님과 다시 화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숨는 것은 단죄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사랑으로 일으켜 주시죠. 자비의 주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향해 ‘너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다. 류선영씨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의 대화를 묵상하며 인간의 사랑을 바라시는 하느님을 떠올렸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녀의 사랑을 바라죠.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만이 아닌 받는 것도 포함하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미 아십니다. 저의 모든 것을 이미 아시죠. 그렇기에 고백하지 못하는 마음도 아십니다.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저를 주님께서는 안아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느낀다면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요? 베드로 사도에게 주님께서 물으신 것처럼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도 똑같이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제 마음을 이미 아십니다’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