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는 하느님의 위로와 힘을 전하자는 취지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마련한 사제와 수도자가 함께하는 모임의 이름이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생활성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모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제목은 내가 살면서 매번 느끼고 믿으며 노래하는 말씀입니다. 외롭고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어찌 누군가의 기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살았을까요. “어떻게 그런 위험을 모면했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지” 등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음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해 많은 기도하게 하셨음을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작은 액자선물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잠언 16,3) 그 글을 보면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하는 성가가 저절로 흥얼거려집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세 살 아래의 신심 깊은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는 사제와 수도자를 위해,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늘 기도하며 본인의 모든 삶을 주님께 의탁하며 삽니다. 그녀의 표정은 밝고 평화롭습니다. 전에는 그 자매가 온통 기도에 젖어 사는 일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신비롭고 늘 기쁘다는 그녀의 기도생활을 요즘엔 조금씩 이해합니다.
정진석 추기경님의 장례미사를 지켜보며, 제자 신부님들께서 둘러선 고별식이 매우 가슴 아팠습니다. 자식 같은 제자 신부님들은 추기경님께서 자신들을 신부로 세우기 위해 늘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셨음을 아시겠지요. 제자 신부님들이 느끼는, 가신 분의 빈자리는 얼마나 클까요. 천국에서와 땅에서 그분들 기도의 소통은 무척이나 뜨겁고 깊으리라 생각합니다.
창궐하는 코로나19를 피해 인도에서 귀국하는 우리 교민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뉴스로 보았습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자체가 많은 어려움이었고, 아직도 많은 교민들이 인도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귀국 비행기 안에서 점차 한국 땅이 가까워질수록 안도감에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얼마나 많은 분들의 기도와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을까요. 하느님의 한없으신 사랑과 조국의 노력에 감사하며 ‘주님은 사랑’이심을 절실하게 느꼈을 겁니다.
나는 아직 남을 위한 기도보다 나를 위한 기도가 더 많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희미한 신앙을 가진 나의 삶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지금껏 가능했음을 죄송스럽게 알아갑니다.
주님과, 나를 사랑하는 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셨음 같이, 나도 이웃에게 하느님의 크신 축복이 내리시기를 기도하고 싶습니다.
“신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가끔 용서하고,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인간을 향한 자연의 분노에 대한 말씀이셨지만, 나는 “신은 항상 용서하고”라는 말씀만 떠오릅니다.
항상 용서하시는 주님!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소서. 기도의 신비와,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늘 넘치도록 하여 주소서.
온 세계가 앓는 전염병이 속히 소멸되도록 간절히 올리는 세상 모두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 믿고 의지할 곳은 오직 주님 당신뿐이십니다.
모든 일이 기도로 이루어지는 ‘주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여주소서.
오늘 나도 ‘누군가’가 되어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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