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해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12-27 수정일 2022-12-27 발행일 2023-01-01 제 332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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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벗어나 구원의 빛으로… 평화를 향한 한마음 강조
코로나19가 낳은 고통과 모순
“형제애와 연대로 극복해야”
‘전쟁은 인류 전체의 패배’ 규정
참된 공동선 추구에 헌신하고
세상의 도전에 직면할 것 요청

2022년 12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성탄절 전야 미사 후 어린이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코로나19 지난 3년 성찰하기

“코로나19는 우리를 어두운 밤으로 곤두박질치게 했습니다.” 교황이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증을 압축적으로 진단한 말이다.

교황은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우리의 계획과 생활습관을 틀어지게 했다”며 “예상하지 못한 도전의 회오리바람과 과학적 관점에서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는 가운데, 엄청난 고통을 완화하고 가능한 치료법을 찾아내고자 전 세계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동원됐다”고 말했다.

교황이 뒤돌아본 코로나19 결과는 참혹하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들춰 낸 우리의 사회와 경제 질서의 균열 그리고 전면에 드러내 버린 모순과 불평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의 고용 안정을 위협했고, 우리 사회에서 특히 가난한 이들과 어려움에 놓인 이들에게서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고독의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세상 여러 곳에서 일자리 없이 그리고 아무런 지원 없이 남겨진 수많은 비공식 노동자들(informal workers)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황은 “실제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 세상의 가장 평화로운 부분조차 뒤흔들어 놓았다”면서도 낙담과 비통의 감정에 머물러서는 코로나19가 만들어 놓은 어두움을 극복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 코로나19에서 배운 교훈

2023년은 지난 3년보다 희망적인 한 해가 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교황은 “우리가 위기의 순간들에서 언제나 똑같이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 곧 이전보다 좋아질 수도 있지만 나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말해 왔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하려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길들을 따라가야 하는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생명과 희망의 표징을 알아볼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교황은 이 질문에 코로나19가 드러낸 긍정적 효과를 들려준다. “우리가 코로나19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무도 혼자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형제애가 자라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보편 가치들을 우리가 함께 찾고 드높이는 일이 시급합니다.”

아울러 교황은 인류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은혜로운 겸손의 회복, 특정 소비주의 주장들의 재고, 타인의 고통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필요에 더욱 잘 응답하게 해 주는 연대의식의 쇄신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얻었다고 평가하면서 함께하는 ‘연대의식’을 다시금 강조한다.

“형제애와 연대 안에서 우리는 평화를 이루고 정의를 보장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극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각자 개별 이익들을 뒤로 하고 힘을 모았던 사회 단체들, 사립·공립기관들, 국제기구들에서 나왔습니다. 형제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사랑에서 나오는 ‘평화’라야만 우리가 개인적, 사회적, 전 세계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교황은 코로나19로 인한 암흑의 시간이 끝났다는 희망을 품으려던 순간에 인류에게 덮친 끔찍한 새 재앙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원인을 ‘죄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마르 7,17-23 참조)이라고 지적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죄한 희생자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고 직접적인 영향에 놓인 이들만이 아니라 수천km 떨어져 있지만 2차적 영향의 고통을 겪는 이들 사이에서도 모든 이에게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불안감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직접적으로 관계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패배’라고 규정한다. 계속해 “전쟁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요청받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 모든 이가 평화의 장인이 되자

교황은 새해를 ‘더욱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참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에 진심으로 헌신할 때’라고 표현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는 개인적 이익이나 국가적 이익을 위한 자리를 갈구하려고만 생각할 수 없고 대신에 우리는 더 큰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열어 두고서 공동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교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인 사실’을 간과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위기들이 모두 서로 연관돼 있고, 우리가 개별 문제들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책임과 연민의 정신으로 우리 세상의 도전들을 직면하라고 요청을 받습니다.”

교황이 우리에게 직면하라고 요청하는 세상의 도전들은 ▲모든 이를 위한 공중 보건의 보장 ▲평화를 강화하고, 끊임없이 빈곤과 죽음을 초래하는 분쟁과 전쟁을 종식하는 활동의 촉진 ▲공동의 집을 돌보고 기후변화와 맞서 싸우기 위한 분명하고 효과적인 조치 실행에 동참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과 식량 및 품위 있는 노동 보장 ▲이주민과 우리 사회가 내버린 이들을 환대하고 통합하기 위한 정책 발전 등이다.

교황은 “이러한 성찰들을 나누고 다가오는 새해에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 교훈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함께 여정을 떠나자”면서 “선의를 지닌 모든 이가 평화의 장인으로서 이번 한 해를 잘 일구어 나가도록 날마다 애쓰리라는 믿음을 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