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란 말은 무엇보다 생명과 희망이 약동하는 느낌을 떠올린다. 청춘이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듯이 새해 첫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비록 몸은 장년, 노년이라고 해도 마음만은 청춘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러 색깔을 다 빨아들여 아름다운 그림의 바탕이 되는 하얀 도화지처럼, 우리도 이 아침에 세상과 이웃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깨끗하고 넉넉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지난 연말이 옛것을 떠나보내는 ‘송구’(送舊)였다면 새해 연시는 새것을 맞아들이는 ‘영신’(迎新)의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은 하루 차이로 햇수, 즉 연도가 바뀌니 신기하고 오묘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을 터인데, 그러함에도 바뀜은 질서 정연하고 틀림이 없다. 창조주 하느님의 섭리가 이런 것이리라.
시간과 때에 대해 생각해 보니 고대 그리스어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스친다.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는 객관적,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에 비해 카이로스는 어떤 특별한 순간이나 변화를 경험하는 주관적이고 결정적인 시간이다. 특히 히브리인들의 시각으로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카이로스적 시간 속에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올해는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한다. 그런 궁리에 바탕하여 한해살이 목표와 계획을 짠다. 초등학교 때 방학 전에 생활 계획표를 만들어 선생님께 보여드렸던 기억이 난다. 흰 도화지에 시계 모양의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안에 하루 시간표를 채워 넣었다. 연간 플랜의 축소판인 일일 시간표이지만 의욕적인 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던 일, 긴 방학이 끝나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쉬워했던 일들.
여러분께서도 올해 플랜을 잡으셨나요? 빅 스텝이든 스몰 스텝이든 무엇인가를 꿈꾸는 의지가 모든 것의 첫발이다. 용두사미나 작심삼일로 그친다 해도 실망하고 주저할 일은 아니다. 그런 시행착오도 자신의 현재를 형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미리 앞일을 걱정하지 마시고 작은 것부터 짜고 실천하시길 권해드린다.
정년퇴직 2년 차를 맞는 필자도 새해에는 새 희망으로 나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소풍을 준비하는 학동의 설렘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인생삼락’(人生三樂)으로 삼은 읽고 쓰고 걷기를 변함없이 실행하려 한다.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 교회와 신앙생활에 대해 더 고민해야겠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시고 어떤 실천을 주문하실까.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기도와 믿음생활에서 벗어나 이웃과 사회로 더 눈길을 돌리고자 한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류시화 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내려놓은 후의 자유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다시 오지 않을 과거를 애절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과거는 기억하고 교훈을 얻어야 할 시간일 뿐이다. 미래는 주저하며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러니 살아있는 현재에 하느님 말씀 따라 행동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끝으로 가톨릭신문의 독자님들께 덕담을 드리며 제 글의 뒷문을 닫는다. “2023년 새해 주님 은총 속에 많은 사랑 주고받고 ‘하느님의 때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토끼 같은 웃음으로 건강 챙기시고 가족들 화목하시고 원하는 모든 일이 풍요롭게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