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검은 토끼해’가 시작됐다. 겨울철에는 다른 계절과는 달리 자연의 독특한 현상을 체험한다. 추위, 찬바람, 얼음, 흰 눈 등. 성경은 겨울에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북녘에서 폭풍이 일고 회오리바람이 몰려온다. 그분께서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눈을 뿌리시니 그 모습이 메뚜기가 내려앉는 듯하다. 사람들은 흰 눈송이의 아름다움을 보고 경탄하며 그 떨어지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분께서는 서리를 소금처럼 땅에 뿌리시고 나무 끝에 얼음꽃을 피우신다. 북새풍이 차갑게 불어오면 물 위에 얼음이 언다. 물 고인 곳마다 자리를 잡고 갑옷처럼 물을 덮는다.”(집회 43,17ㄴ-20)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이 언제 내리려나 새삼 마음속으로 기대하며 창문 쪽 회색 하늘에 시선을 종종 돌리곤 했었다. 흰 눈송이가 양털처럼 이리저리 날리더니 금방 함박눈으로 변했고 온 세상이 잠시나마 하얗게 되었다. 밤새 내린 첫눈을 보며 청춘기에 이른 소녀처럼 마냥 좋아했다. 이른 아침 신자들이 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제설도구를 찾아 성당 마당에 쌓인 눈을 홀로 치웠다. 정오가 지나면서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쌓인 눈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오후에 다시 눈이 내렸고,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내렸다. 보좌신부와 신학생, 수녀님과 사무실 직원 다 함께 쌓인 눈을 치우고 또 치웠지만 눈은 지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날이 갈수록 양털 같은 눈은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불평과 짜증의 대상이 되었다. 성탄은 다가오는데 예상을 뛰어넘고 20㎝ 이상 눈이 쌓였다.
밤새 얼어붙은 도로는 위험한 빙판길이 되고 말았다. 평일 오전 미사가 끝난 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19 상황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에 참여하신 팔순의 모니카 자매님이 빙판길에 넘어져 팔목 뼈가 부러지는 6주 골절상을 입었단다.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람들은 흰 눈송이의 아름다움을 보고 경탄하며 그 떨어지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지만”(집회 43,18) 소복이 쌓인 눈은 보행자나 차량을 운행하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큰 불편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오랜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는 기쁨보다 마당에 쌓여있는 눈이 녹지 않아 걱정이 크게 앞섰다. 보좌신부를 중심으로 그간 초중고 학생들과 성가대 그리고 전 신자가 참여하는 성탄 밤 미사를 잘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오후부터 제설 작업을 하려고 각 단체에 비상연락해 모여든 신자들과 함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주차된 차량을 이리저리 옮기고 저마다 제설도구를 들고 두껍게 쌓여 얼어붙은 눈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성당 마당이 왜 이리 넓어 보이는지. 아직도 치워야 할 눈은 많았다. 모 그룹 회장이 쓴 자서전 성격의 수필이 생각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진다. 이렇게 눈이 내렸다고 호들갑을 떠는 상황이라면 겨울마다 쌓인 눈과 다투어야 하는 산악 지역의 성당들은 얼마나 더 고생할까.
얼마 전 영화관에서 본 김대건 성인을 다룬 영화 ‘탄생’이 문득 생각났다. 국경선을 넘으려고 북풍에 얼음이 얼고 흰 눈이 쌓인 첩첩산중을 걸어다니시던 성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힘들고 고된 여정에도 전혀 불평하지 않고 사제로서 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신 성인을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럽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순교 성인들 덕분에 지금은 얼마나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마당에 쌓인 눈을 모두 치우고 나니 피곤함보다 기쁨이 앞섰다. 시골에서 성당으로 오는 먼 길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전부터 성탄 밤 미사에 참여하러 오신 어르신들이 조심조심 마당을 걸으시며 한 말씀 하신다. “워매, 누가 눈을 다 치워버렸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