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본당의 날 행사 장소를 충남 홍성 홍주성지로 정하며 전 신자 성지순례를 준비해 왔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바깥세상을 구경해 보지 못한 분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그리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성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폭염과 극심한 가뭄,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엄청난 폭우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들이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록적인 폭우로 7월 15일 오송 지하차도에 물이 잠겨 안타깝게도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8월 1일부터 12일까지로 예정됐던 전북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도 역대급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며 파행으로 진행되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조기 종료되는 국제적 망신까지 당했던 터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성지순례를 꼭 이 뜨거운 날에 가야 하나요?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걷다가 쓰러지신다면,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진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등 신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신자들에게 성지순례의 의미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참여를 권고했지만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보내겠다”, “자녀들이 찾아온다”, “집안일을 정리한다” 등 이런저런 이유로 신청자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느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기도에 전념했다. 당일 아침, 신청자들을 모두 확인한 다음 버스에 올라탔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지 소개를 하다 보니 홍주성지에 도착했다.
성지 전담인 오남한(루카) 신부님이 직접 주차장까지 마중나오셨다. 내포 천주교의 시작점인 홍주성지는 충청도의 첫 순교터다. 이곳에는 6곳의 순교터가 있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124위 시복미사에서 시복된 네 분을 비롯해 1000여 명이 넘는 무명순교자를 배출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곳이란다.
버스에서 내린 신자들은 홍주성읍 남문에 위치한 소나무밭으로 이동했다. 소나무 밑에는 편안하게 앉을 수 있도록 배열된 의자와 더위를 식혀줄 차가운 얼음물까지 준비돼 있었다. 신부님의 주례로 거룩한 미사가 봉헌됐고 영혼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성모 신심과 순교자 신심에 대한 주옥같은 말씀으로 모두가 넋을 잃고 말았다. 미사 후에는 저렴하면서도 참으로 맛있는 뷔페 식사를 통해 기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얕은 구름이 몰려와 강렬한 태양의 얼굴을 가려주었고 시원한 바람까지 살랑살랑 스쳐갔다.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했던 순교자들의 삶을 설명해주는 신앙해설사들의 뒤를 따라 신자들은 저마다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고백했던 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모두가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
순교의 증거터인 목사 동헌과 홍주 진영과 저잣거리, 순교터인 홍주옥과 참수터와 생매장터를 돌았다. 예비신자였으나 순교 직전 옥중 세례를 받았던 복자 원시장(베드로)은 겨울에 가혹한 매질을 당하고 몸에 찬물을 맞으며 서서히 얼어죽는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저를 위하여 온몸에 매를 맞고, 제 구원을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얼고 있는 이 몸을 봉헌합니다”라는 봉헌기도를 바쳤단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ㄱ) 돌아오는 길에 6곳의 순교터와 증거터의 순례지 관할 성당이라 하기엔 너무 초라한, 약 20여 평 규모의 자그마한 임시 성당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