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르포] 서울 사회복지회 가톨릭공부방협의회 경주 역사기행

입력일 2009-04-11 14:45:34 수정일 2025-02-27 14:12:11 발행일 1999-02-14 제 213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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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걱정... 에밀레 종소리와 함께 '훌훌' 
친구들과 모처럼 마음 터놓고 이야기 꽃 피워 
얼굴엔 웃음 가득…새로운 삶 활력소 얻어 
“세파에 굴하지 않고 가슴 활짝 열고 살래요」
공부방 학생들이 「에밀레종」을 둘러보며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곳이 바로 천년 신라 보물들이 있는 경주 박물관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체가 역사인 이곳 경주 박물관을 통해 살아 숨쉬는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 우리 민족의 보고(寶庫)를 접한 이들의 눈망울은 신비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다. 겨울 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1월 27~28일 이틀간 서울 사회복지회 산하 가톨릭공부방 협의회는 천년 고도(古都) 경주에서 역사기행을 펼쳤다. 10개 가톨릭 공부방 중.고등학생들과 교사 80명이 이번 역사기행에 참가했다.

저소득층, 결손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부방. IMF 이후 실직자 가정들이 늘어 나면서 공부방 학생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래서 이들의 얼굴은 항상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번 역사기행에 참가한 중학교 2학년 정진(엘리사벳)이는 처음으로 경주땅을 밟았다. 부모와 여동생 2명이 함께 살고 있는 정진이네 가정은 매우 절박하다. 작은 단칸방에서 5식구가 살고 있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어머니가 뇌수술을 받아 기본 생활조차 힘든 상황. 어린 정진이로서는 이러한 현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정진이는 언제부터인지 웃음을 잃고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던 정진이가 친구들과 처음으로 방문한 이곳 경주는 모처럼 마음을 터놓고 활짝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진이는 뜬눈으로 밤을 새며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허물없는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특히 정진이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아픈 상처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이번 역사기행은 지난 여름 계획됐던 농활이 폭우로 인해 취소되면서 겨울방학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우리 문화유산을 가르치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이번 기행에는 정확하고 자세한 식견을 심어주기 위해 특별히 이형권 우리문화유산연구소장이 안내를 맡았다.

많은 식구들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경비도 만만찮았다. 그래서 가톨릭공부방 협의회는 지난해 12월 공부방 연합으로 좥우리들의 잔치좦를 열어 그 수익금을 이번 역사기행 비용으로 사용했다. 아울러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여행경비를 부담했다.

공부방 책임을 맡고 있는 김정희수녀는 이번 여행으로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러한 바람에 응답이라도 하듯 연신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더 기쁩니다. 여행을 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하고 적극적이어서 이번 역사기행은 성공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모든 근심들을 떨쳐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방에 들어와서 신앙인이 되기로 결심한 진정이. 그는 공부방 교사들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에 큰 감명을 받고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진정이는 열악한 가정 환경에다 하나 뿐인 오빠가 마음을 못잡고 방황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진정이로서는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이럴때 마음을 잡게 해준 곳이 바로 공부방이었다. 비슷한 환경의 친구들을 통해 용기를 얻었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대하는 교사들을 보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꿈나무', '마음터', '꽃망울' 등으로 불리우는 가톨릭 공부방들. 공부방 모든 교사들은 이 이름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희망과 꿈을 펼쳐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너무나 아쉬운 1박2일의 짧은 역사기행. 하지만 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참가했던 모든 공부방 친구들은 저마다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슴에 담고 다시 서울길에 오른다. 가슴을 활짝펴고 생활하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