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믿음의 새벽문

이승훈
입력일 2025-02-04 17:26:46 수정일 2025-02-04 17:26:46 발행일 2025-02-09 제 342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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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은총이 주어졌다, 베이징에 있는 ‘북당’으로 성령께서 초대해 주신 것이다. 시스쿠(북당) 성당은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엄하고 아름다운 고딕 성전이다. 제대 뒤에는 이승훈(베드로), 주문모(야고보) 신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역사화가 제작되어 있었다. 세분의 숭고한 신앙을 유리화에 새겨놓다니…울컥했다. 1784년 이벽의 권유로 북경에 간 이승훈은 북당에서 교리를 받고 한국의 첫 영세자가 됐다. ‘주춧돌이 되라’는 의미로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주신 그라몽 신부님, 한국의 반석을 선택한 명민한 지혜는 자생교회 창립을 위한 하느님의 치밀한 구원기획이자 섭리였다.

2021년 10월 북당에서 받은 은총이 보름달처럼 떠올라, 이승훈 선조의 얼을 찾아 반주골 성지로 향했다. 길은 으슥하고 무서웠다. 돌아갈까 훅 유혹이 들어오자, 속내를 아신 성령은 “두려워하지 마라, 견디어라, 머물러라” 말씀하시며 친절히 동행해 주셨다. 반석의 묘는 초라했다. 숙명적으로, 성 베드로의 생애를 닮은, 한국의 반석 이승훈 베드로는 교회사에 한 획을 그은 존귀한 창립주역이 아니신가. 위로가 절로 나왔다. “베드로 선조님, 언젠가 이 성지가 잘 조성되어 신앙의 후손들이 당신의 영성과 업적을 기리며 현양 할 수 있는 성지가 되도록 기도할게요.” 

희소식이 들려왔다. ‘이승훈 베드로 성지 기념관’의 축복식과 현양미사가 2024년 9월 12일 열렸다는 뉴스다. ‘초대장’ 같은 메시지다. 설렘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기념관은 단아했다. 강론을 들으면서 첫 순례의 오해는 풀렸다. 그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성지 조성이 어려웠던 것이다. 인천교구와 인천광역시가 합작해 숙원사업을 이룬 것은 간절한 기도와 정성이 뭉쳐 만든 결과요, 기적이다. 

감동을 안고, 다시 반주골 묘지로 올랐다. 으슥했던 순례길은 새롭게 조성되고, 묵상하기 좋게 14처도 제작되어 있었다. 묘지 앞에서 마음의 꽃다발을 드리고 축하도 드렸다. 

“당신의 성지가 새롭게 조성되고 기념관이 설립되어 참 기쁘시죠. 북당에서 시작된 구원의 빛은 세세대대로 밤하늘에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믿음의 새벽문’을 열어주신 희생적인 용기와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지를 떠나기 전, 기념관 벽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池盡).’ 그 뜻은 ‘달은 지더라도 하늘에 있고, 물이 치솟아도 연못 안에 있다.’ 순교 직전에 남기신 유언 같은 말씀이자 뭉클한 영적 유산이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앞에, 얄팍한 내 신앙이 부끄럽다, 믿음의 새벽문을 여신, 반석의 신비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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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경자 엘리사벳(수원교구 제1대리구 신남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