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바우배기 카타콤바

이승훈
입력일 2025-02-18 17:38:26 수정일 2025-02-18 17:38:26 발행일 2025-02-23 제 343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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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여 년이란 긴 침묵을 깨고 우리 곁에 오신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일대 성역화 과정에서 발견된 카타콤바다. 우리나라 첫 순교자신 윤지충(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 윤지헌(프란치스코), 세 분의 유해가 후손들 앞에 나타난, 부활의 신비기도 하다. 교리당에 모셔진 숭고한 유해를 알현하면서 기적 같은 만남에 감격스런 눈물이 인사를 대신했다.

선혈의 꽃들이 피어난 바우배기는 주님께서 철저히 숨겨둔 카타콤바였다. 2021년은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과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기념비적인 해다. 영광스런 이 해에 우리 곁에 보내주신 세 분 순교자들의 유해와 역사적인 가치와 섭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주도면밀한 특별한 기획이 아니겠는가. 신비체를 머금어 온 카타콤바는 지존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지성소였다.

초남이성지 일대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활약은 대단했다. 교리당에서는 신분의 차이 없이 교리를 가르치고, 호남 일대에 복음을 전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고, 애긍을 실천하며, 주문모 신부님을 모셔와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도 베풀게 하셨다. 가족들의 슬픈 순교사화는 파가저택의 수련으로 피고 지고, 큰아들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 동정부부의 영적인 사랑과 향기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졌다.

유항검 사도의 백자사발의 기록과 용기와 지혜가 없었다면, ‘바우배기 카타콤바’는 결코 세상에 드러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 분 순교자의 유해발굴 과정과 심문기와 공술서가 수록된 「자료집」 또한 영적 보물이다. 공술서에 기록된 신앙고백은 순교영성의 극치요, 진수다.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배반하고는 갈 곳이 없습니다.” 제5복음 같은 말씀들, 천국을 흠모했던 순교 선조들은 천상의 지혜를 주는 은인이요, 스승들이시다.

눈만 뜨면, 하느님에 관한 지식과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 과연, 초기교회 선조들처럼 일목요연하며, 용기 있게 신앙을 증거할 수 있을까, 순교자들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초라한 내 신앙이긴 하지만, 성지를 다니며 친해진 성인들의 통공과 든든한 백으로, 천상의 향연을 꿈꿀 수 있게 됐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 한가.”

차차 성지순례 완주의 기쁨과 감흥이 식어가고, 교만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할 때 “나는 다시 떠나리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거룩한 땅으로 회개와 치유의 장막으로, 그곳엔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들이 따뜻이 반겨주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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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경자 엘리사벳(수원교구 제1대리구 신남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