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김수환 추기경 공군대학 특강(요지)

입력일 2012-04-06 15:35:48 수정일 2025-02-24 16:58:26 발행일 1996-11-10 제 202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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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지켜야할 가치는 하느님 사랑ㆍ인간 사랑”
김수환 추기경은 10월 31일 3군 대학이 있는 자운대에서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를 주제로 특강했다.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10월30일~31일 육해공군 3군 대학이 있는 자운대를 방문, 30일 자운대성당(주임=이동훈 신부)에서 1백14명에게 견진성사를 집전하고, 31일 오전 10시40분 자운대 대강당에서 「끝가지 지켜야할 가치」를 주제로 특강 했다.

이날 행사는 6개월전부터 추기경의 특강을 부탁한 공군대학 총장 최명상(아우구스티노)장군의 간곡한 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3군 대학 재학생들과 간호사관생도, 군인가족 등 7백여명이 강의를 경청했다.

다음은 김수환 추기경의 특강 요지이다.

「세계화」는 무엇을 뜻합니까? 세계화는 기회이면서 도전입니다. 세계화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요, 이 경쟁에서 이겨내는 능력과 기술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무엇입니까? 첨단 기술 배양과 고급인재 양성이 바로 그것입니까?

그러나 저는 이런 의미가 「세계화」라고 강조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세계화에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결핍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세계화란 먼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한편 각자 고유의 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민족이나 인종, 피부색깔, 빈부의 격차 등 모든 차별을 넘어서 하나될 때, 모두가 고르게 잘 살고 모든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이 참된 의미의 세계화일 것입니다.

세계화를 위해선 온 세계 모든 민족과 인종, 인류 전체를 향해 열려있는 마음, 모든 이를 사랑하고 품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고, 이런 가치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거창하지 않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한 인간, 남을 존중하고 위할 줄 아는 인간,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국제 감각이 뛰어나고 기술이 있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지 못하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화의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정부패와 비리, 「지존파」「막가파」와 같은 흉악범죄가 잇따르고 있고, 이기주의, 물질주의, 사치와 과소비로 물든 오늘날의 한국인상을 그대로 둔 채 세계화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참된 인간」이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참된 인간교육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어떻게 생겼든, 불구자이든, 바보이든 한 인간으로서 신성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녔습니다. 이는 신앙인은 물론, 불신앙인, 무신론자, 유물론자들까지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법 이전의 천부적인 것입니다. 평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천부적인 것」은 곧 하늘이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은 사실상 믿음의 문제입니다. 바로 하느님이 인간을 절대적으로, 조건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합니다.

그럼 끝까지 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하느님이 절대적이요, 조건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이웃을, 특히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 약한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이 두 사랑은 하나의 사랑입니다. 인생의 길은 바로 이 사랑입니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오늘 이 시대에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지성인들이 이런 인간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이런 인간관을 기초로 한 생활 가치관을 교육을 통해 심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언론이 이런 인간관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목탁의 역할을 한다면 하는 소망 또한 큽니다.

저는 이 사랑을 살 때 우리는 참으로 세계인이 되고, 한국은 세계에서 빛나는 큰 나라가 되며, 통일도 그 힘으로 이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